‘한강의 기적’.. 지난 반세기 한국 경제가 일궈온 성과는 실로 기적에 비유할만 하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올라섰다. 결과만 놓고 보면 단순하지만 그 과정은 지난하고 복잡다단했을 터다. 지난 반세기 우리 경제의 획을 그었던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면의 역사를 정리한다. [편집자주]

[블록미디어 이건우 객원기자] 60년대 초반 한국의 경제상황은 말그대로 폐허지경이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계 최빈국이었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5.16 군사정부가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당연히 경제문제였다.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군사정부는 전임 민주당 정권에서 만들었다가 사장된 계획안을 토대로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정리해 서둘러 발표한다. 경제비전의 제시는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초미의 과제였다.

◆ 원조경제 주축 ‘미국’의 냉담한 반응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제1차 경제개발계획은 시행 첫 해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한다. 원조경제를 주도해 온 미국이 양국 정부간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개발계획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성장률을 너무 높게 잡았다” “제철소 건설은 불가능하다” 등등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았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버거와 미 대외원조처(USOM) 킬렌 처장 등은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워싱턴에 보고했다. 연평균 GNP성장률 목표 7.1%는 현실을 무시한 과도한 의욕에 불과하며, 24억달러의 외자조달 계획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했다.

이 같은 부정적 시각은 결국 미국 정부의 자금지원 거부로 표출됐다. 특히 63년 3월 군사정부가 군정 연장 방침을 발표하자 미국은 더욱 냉담해졌고, 그 결과는 AID 원조자금 축소로 이어졌다. 경제개발 초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생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경제기획원은 결국 1차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전면 수정작업에 착수한다. 1년여에 걸친 수정작업을 거쳐 1964년~1966년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3개년 수정계획이 윤곽을 드러냈다. 연 평균 경제성장률 목표는 당초 7.1%에서 5%로 대폭 축소됐다. 수정 전 계획이 다분히 자주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데 반해 수정 후 계획은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대외지향적이고 개방적인 내용으로 보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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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과정에서 ‘국가 지도(指導)’를 내세우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부분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자칫 사회주의식 경제개발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이 같은 시각차 속에 한미간의 불편한 관계는 2년여 이상 지속됐고, 64년 수정계획안이 나오고서야 양국간 마찰은 해소됐다.

◆ “우리도 할 수 있다”

시행 첫 해의 부진한 실적과는 달리 66년 마감된 제1차 5개년개발계획의 최종 성과는 눈부신 것이었다. 62년부터 66년까지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8.5%를 기록해 수정 전 목표치 7.1%를 넘어섰다. 1인당 국민총생산은 같은 기간 83달러에서 125달러로 늘어나 연 평균 5.6%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결과는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Can-Doism)는 자신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경제개발계획은 이후 81년까지 4차에 걸쳐 진행되면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끄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82년 제5차 계획부터는 명칭이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바뀌었으며, 96년 제7차 5개년계획을 끝으로 35년간의 경제개발 대장정은 마무리된다.

경제개발계획이 군사정부 최고 지도자였던 박정희에 의해 주도된 것인지, 아니면 박정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시 미국의 외교전략에 의해 조성된 역사적 필연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하지만 경제개발계획이 50년대 폐허상황을 극복하고 ‘도약(Take-Off)’을 통한 산업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경제개발을 위한 통치권자의 의지와 기업들의 협조,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외교의 3각 시너지 속에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거대한 역사가 탄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