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광온 기자] 전 세계 각국 정부가 약 13경원대의 전례 없는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유권자를 의식해 공공 부채 문제에 눈을 감고 있는 상황이다.
◆전 세계 부채 규모 91조달러…세계 GDP와 비슷한 규모
2일(현지시각) 미국 경제매체 CNN비즈니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정부 부채는 97조 달러(약 13경4810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2년 말 기준 전 세계 공공부문 부채 규모는 91조 달러(약 12경6271조원)였는데, 1년 만에 약 6조 달러(5.7%)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정부부채 이자 규모도 2년 전인 2021년보다 26% 증가한 8470억 달러(1천164조6000억원)에 이른다.
전 세계 공공 부채와 민간 부채를 합친 ‘총 부채’는 지난 1분기(1~3월) 315조1000억 달러(약 43경2936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직전 분기(2023년 4분기) 대비 약 1조3000억 달러(약 1804조1400억원) 증가한 것이다.
전 세계 GDP 대비 부채 비율도 333%에 달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직전년도 1분기(307조 달러)와 비교하면 8조1000억 달러(약 1경1138조원) 증가했다.
CNBC는 “2차 세계 대전(1939년~1945년) 이후 가장 규모도 크고, 속도도 빠르며, 광범위하게 부채가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부채 부담에 따른 파생 위험…위기 상황 대응 자금↓, 경제성장 악화
이처럼 정부부채 규모가 커지면 부채 상환 비용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금융 위기나 전염병,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공공 자금이 줄어들게 된다.
아울러 국가 부채에 대한 우려로 정부 채권 수익률이 높아져, 가계와 기업이 갚아야 할 대출 이자 비용도 오르게 된다. 정부 채권 수익률은 주택담보대출 등 다른 부채 가격을 책정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 미치게 된다.
이자율이 상승하면 민간 투자는 감소하고, 정부는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차입 능력(주식과 부채를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해진다.
미국 재무부 전 수석 경제학자이자 하버드 케네디 스쿨 교수인 캐런 다이넌은 “이 같은 ‘정치적 기능 장애’는 투자자들이 정부의 부채 상환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고, 결국 금융 시장에는 빠르게 불안이 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 앞둔 각국 정부, 유권자 의식해 무식…”금융 위기 촉발할 방만한 약속 하기도”
이 같은 상황임에도 선거를 앞둔 각국 정부는 이 같은 재정 문제를 무시하고 있다고 CNN비즈니스는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전 세계에서 선거가 실시되는 해에 정치인들은 대체로 이 문제를 무시하고 있으며,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를 꺼려하고 있다”며 “어떤 경우에는 최소한 인플레이션을 다시 끌어올리고, 새로운 금융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방만한 약속을 하기도 한다”고 짚었다.
실제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연 40만 달러(약 5억5504만원) 미만 소득자에 대해선 세금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집권 1기(2017~2021년 대통령 당시) 때 시행한 감세 정책을 영구화하려는 공약을 내놓았다.
영국도 총선을 앞둔 상황인데, 보수당과 노동당은 영국 3대 세금인 소득세와 국민보험기여금(NIC), 부가가치세(VAT)에 대한 동결 혹은 인하를 약속했다. 이는 세금들은 영국 정부 세수의 약 60%를 차지한다.
이외에도 케냐에서는 8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27억 달러(약 (3조7500억원)의 세금을 추가로 거둬들이려 했으나, 전국적인 시위로 39명이 사망하는 등 극심한 반발에 결국 이를 철회했다.
◆전문가들 “부채는 더 이상 무료 아냐…고통스러운 조정에 들어가야”
다이넌 교수은 “많은 정치인은 내려야 할 어려운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도 “부채는 더 이상 무료가 아니다”며 미국 및 다른 국가들이 고통스러운 조정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영국의 독립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는 열악한 공공 재정 상태를 두고도 모두 실질적인 문제를 직면하지 않은 채 ‘침묵의 공모’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미국의 높은 부채 규모를 지적하며 “우리가 지닌 부채 수준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이에 따라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NN비즈니스는 “이 같은 각국 정부의 전례 없는 빚 규모는 결국 자국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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