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몬텔레나,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화이트 1위
미국 나파밸리 전설된 유고 출신 양조가 작품
강렬한 향과 맛에다 탄탄한 스토리까지 유혹적
[블록미디어=권은중 전문기자] 와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1976년 ‘파리의 심판’이라는 사건을 들어봤을 것이다.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는데 그때까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압도한 사건이었다. 유명한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는 이 사건을 “(프랑스 와인 독주를 끝내는) 와인의 민주화를 이룬 혁명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단독 보도했다. 《타임》이 단독보도 한 것은 파리 주재 미국 기자들이 누구도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기획된 와인 블라인딩 테스트에서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따돌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단독 보도한 조지 태버도 역시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이기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시음 현장을 갔다고 회고했다.
그렇지만 시골 와인쯤으로 여겼던 미국 와인은 레드와인뿐 아니라 화이트와인도 미국 와인이 1위였다. 설욕을 다짐한 프랑스는 10년과 30년 뒤에 각각 미국 와인과 붙었다가 또다시 미국 와인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이후 미국 와인은 약진을 거듭해 지금은 프랑스 와인만큼 유명한 와인들을 생산하는 와인 대국이 됐다.
파리의 심판에서 1위를 한 와인은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 있다. 스택스 립이나 클로 뒤발 같이 파리의 심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미국 레드는 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도 프랑스 레드 와인에 견주면 착한 편이다.
하지만 내가 즐기는 파리의 심판 와인은 화이트 와인인 샤토 몬텔레나다. 샤토 몬텔레나는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뫼르소나 몽라셰에 견줄 만큼 맛나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몇년전까지 10만원 정도였는데 작년부터 가격이 크게 뛰어 현재는 20만원을 육박한다. 그래서 세일을 할 때 10만원대 초반 가격으로 출시되면 두세 병을 사두었다 귀한 모임에 가져간다. 또 와인 수업을 할 때에도 이 와인을 가져가곤 한다. 수강생들이 가장 마시고 싶어 하는 와인의 하나다.
샤토 몬텔레나를 만든 양조가는 크로아티아 출신인 미엔코 마이크 그르기치다. 그는 1954년 32달러라는 돈을 들고 공산 유고에서 탈출했다. 그 이후 독일,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왔다. 캐나다 벌목공 신분으로 이민을 왔다가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 온 것은 와인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는 공산주의 유고에서 회계사를 할 정도로 나름 안정된 삶을 살았지만 숫자와 서류에 얽매이는 삶을 거부했다. 그는 양조를 배우기 위해 독일을 거쳐 미국으로 왔던 것이다.
이후 그르기치는 로버트 몬다비 등과 전설적인 양조가들과 함께 나파밸리의 혁신을 이룬다. 그가 이룬 혁신은 유럽에서 그가 배웠던 것에 기초했다. 그는 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했고 유고를 떠나 독일에서 잠깐 포도농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의 양조 철학은 포도밭을 가꾸던 그의 부모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그의 부모는 글을 배운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양을 치고 포도를 키웠다. 그르기치도 어릴 때 양치는 일을 도왔다. 하지만 그는 그의 부모에게서 와인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그르기치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와인을 대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양조기술로만 위대한 와인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 포도를 잘 알아야 한다. 포도가 자라고 익어가는 걸 늘 지켜봐야 한다. 아로마와 풍미가 적당할 때 수확을 해야 하며, 포도의 향미를 그대로 와인 속에 저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열정과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예술성과 열정없이는 와인에 생명이 깃들 수 없다. 결국 대지의 어머니,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그분이 와인을 만드신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신과 함께 일하는 걸 배울 뿐이다.”
포도의 산도와 당도 그리고 발효와 숙성 온도 등 기술적 팩트에만 관심을 쏟던 1960년대 미국 양조업계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그르기치는 신선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그르기치는 나파밸리에 최초로 과학적인 젖산 발효를 도입했고, 프랑스 최고급 오크통인 리무쟁 오크로 레드 와인을 숙성했다. 또 와인의 지꺼기를 석면을 대체해 의료용 필터를 도입해서 깔끔하게 걸러내는 방식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의 실력이 널리 알려지면서 지분까지 주면서 그를 스카우트 하려는 와이너리들이 생긴다.
그중의 하나가 1920년대 금주법으로 50년 가량 문을 닫았던 샤토 몬텔레나였다. 1972년부터 그르기치는 샤토 몬텔레나에서 화이트와 레드를 만들기 시작한다. 숙성 기간이 짧은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가 주력이었다. 레드는 적어도 5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바로 수익을 맞출 수가 없다. 그런데 샤르도네를 생산한 지 2년만인 1973년 샤르도네가 파리의 심판에서 1등을 한 것이다. 2년만에 기적을 일군 셈이다.
이 와인의 첫잔이 샤르도네보다는 레몬 과즙같은 뾰족한 산도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와인이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바디가 열리면서 산도는 옅어지고 열대과일과 바닐라 등의 풍미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다른 미국 와인들과 달리 과하지 않고 우아하다. 오묘한 균형감이다.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코르크를 열고 1시간 정도 지나서 먹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르기치의 자서전을 보면 이 와인은 40년 이상 숙성될 정도로 잠재력이 강하다. 그 잠재력이 부드럽게 표현된다는 점이 마실때마다 흥미롭다.
그르기치는 2023년 10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1974년부터 그르기치 힐스라는 자신의 와이너리를 열었다. 1958년 나파 밸리를 밟은 뒤 15년 만의 일이었다. 이 그르기치 힐스에서 나오는 와인이 가장 많이 수출되는 나라의 하나가 한국이라고 한다. 한국도 와인을 맛이나 가격뿐 아니라 스토리로 소비한다는 뜻일 것이다. 와인 애호가로 반가운 일이다.
* 권은중 전문기자는 <한겨레> <문화일보>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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