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베니스의 상인, 블록체인 그리고 비트코인

 

암호화폐(가상화폐)와 관련해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가 블록체인은 좋은데 암호화폐는 투기 수단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암호화폐는 강력히 규제하면서 블록체인은 육성한다는 정책이 나온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세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이 떠오른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돈을 꿔주면서 갚지 못할 경우 채무자의 살점 1파운드를 떼어 가지기로 계약한다. 그러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살만 1파운드를 때어내라는 판결을 받는다. 그래서 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상대방을 죽이려는 음모도 실현하지 못하고 도리어 재산을 빼앗긴다. 이것저것 다 빼고 ‘피와 살’은 살아있는 것에서는 서로 연결돼 있는 한 몸이라는 내용만 ‘베니스의 상인’에서 취했다.

 

 

Shylock After the Trial by Sir John Gilbert(Source=Emory University)

 

 

‘피와 살’이 한 몸이고 살아있는 생명체에서 따로 분리하기 어렵듯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도 한 몸이다. 블록체인이 살이라면 암호화폐는 피다. 피가 없는 육체가 생존할 수 없듯이 암호화폐가 없는 블록체인도 발전할 수 없다.

블록체인은 분산원장이다. 분산원장이 가동하려면 다수의 개인들이 자신의 컴퓨터를 통해 시스템에 참여해야 한다. 암호화폐는 개인들이 분산원장 시스템에 참여할 때 지불하는 보상이다. 보상이 없으면 분산원장은 작동할 수 없다. 참여자가 없을 테니까. 참여의 대가로 암호화폐가 지급되고 또 그 암호화폐를 시스템속에서 사용하는 생태계가 구축된다. 대가가 지급되지 않으면 블록체인 생태계는 붕괴된다.

암호화폐의 종류가 수천 종에 달한다는 얘기는 비트코인의 생태계를 응용한 새로운 블록체인 생태계가 수천 개 생겨나고 있다는 얘기다. 치과의사와 환자의 정보를 분산원장에 공유하는 덴탈 생태계, 전문가들의 지식을 공유하는 지식 생태계. 이런 식으로 생태계의 비전을 제시하고 여기서 사용될 암호화폐를 사전에 ICO를 통해 시장에 내다판 뒤 이 암호화폐가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새로운 생태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이다.

개중에는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실패하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을 수도 있고 비전만 그럴 듯이 제시하고 돈만 가지고 사라지는 사기꾼도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의 발달에 따른 야생의 진화를 목격하고 있다. 수많은 꽃씨들이 바람에 날아간다고 모두 꽃을 피우는 풀 또는 나무가 되지는 못한다.

 

 

 

 

지금은 기술혁명의 시대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도 한다. 정부는 지원과 조절만 하면 된다. 농부가 일일이 모판을 심는 농법으로는 혁명에 성공할 수 없다. 꽃들이 광활한 자연으로 퍼져나가도록 뒷받침할 일이다. 암호화폐는 규제하고 기존 금융권, 제도권 기구들이 블록체인 기술만 활용하도록 하는 정책은 효율성만 조금 높이는 관리농법이다. 혁명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다시 베니스의 상인으로 돌아가자. 피 없는 살은 생명이 아니다. 암호화폐 없는 불록체인은 피 없는 살과 마찬가지다. 우리말로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