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윙클보스 형제 그리고 비트코인

암호 화폐를 둘러싸고 세상이 시끄럽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암호 화폐시장이 불법이 판치는 노름판과 다름없고, 각종 사회병리 현상을 야기한다고 골치 아파한다. 정부 정책에는 ‘거래소 폐쇄’라는 단어까지 등장한다. 정부 정책 기사 댓글에는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암호 화폐 투자자들이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다. 혁신역량이 떨어진다, 무능하다는 둥 노골적인 비난이 주류를 이룬다. 마주 달리는 기차다. 기차가 충돌하면 서로 피해를 볼 게 뻔하다. 엉뚱하게 두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와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의 얼굴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1799)

그림 오른쪽 남자가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다. 가운데는 그의 아내 헤르 실리아. 사진 왼편은 사비니족의 왕이자 헤스실리아의 아버지인 타티우스다. 로마족은 잔치를 한다며 사비니족을 초대한 뒤, 잔뜩 술을 먹인 뒤 사비니족의 여인들을 납치해 그들의 아내로 삼았다. 여자가 없는 로마인들 입장에서는 종족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사랑하는 딸과 여동생을 강탈당한 사비니족의 입장은 처참했다. 절치부심한 사비니 족히 전열을 가다듬어 3년 뒤 로마를 공격한다. 헤스 실리아를 비롯한 사비니족의 여인들은 전쟁판 한가운데 뛰어들어 화해를 외친다. “이 아이는 당신의 손주이고 당신이 죽이려는 사람은 내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서로 죽이지 마세요. 우리는 이제 피로 맺어진 가족입니다.” 여인들의 외침이 귀에 들리는 듯 선하다. 로마와 사비니는 화해했다. 두 사람은 왕위에 함께 올라 권력까지 공유했다. 로마의 번영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비트코인 규제 공청회에 관련 기업인들과 참석 중인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

 

◆ 미소짓는 윙클보스 형제

 

지난해 12월 18일 시카고 선물거래소(CME)에 비트코인 선물이 상장됐다. 타일러·캐머런 윙클보스 형제는 아마도 크게 웃었을 것이다. 비트코인 선물 상장의 뒤편에는 이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이들은 비트코인에 투자했고 관련 기업에도 투자했다. 2015년 미국 뉴욕 주는 비트코인 규제 제도(비트 라이선스)를 도입한다. 2014년 한해 동안 진행된 공청회 등 규제 진행 과정은 다큐영화 뱅킹 온 비트코인(Banking on Bitcoin)에 잘 나와 있다.

2014년은 비트코인이 실크로드에서 마약 등 불법 제품의 거래에 사용돼 논란을 빚고 거래소 마운트 콕스가 파산한 한 해로 비트코인으로서는 굴국이 심한 해였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윙클보스 형제는 강자다. 그들은 비트코인의 발전을 확신한다. 그러면서 규제의 필요성을 받아들인다. 비트코인의 혁신성을 믿지만 비트코인이 발전하려면 규제 기관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투자 기업들에 강조한다.

뉴욕의 초기 비트코인 혁신가 기업가들은 규제를 피해 떠난다. 그 자리를 월가의 거물들과 벤처 투자자들이 채운다. 윙클보스 형제는 한걸음 더 나가 뉴욕 증권거래소에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상장을 추진한다. 그 전제조건으로 선물거래소 상장이 거론되자 이를 추진해 결국 성사시켰다.

이들은 12만 개의 비트코인을 2012년부터 보유하고 있다. 최초의 비트코인 억만장자에 등극했다. 비트코인의 혁신성과 발전을 믿지만 정부와 협업하면서 산업을 이끌어 왔다. 로마인과 사비니인들이 옳고 그름만을 따지며 싸움을 이어갔다면, 로마의 영광은 찾기 힘들었을 수 있다. 비트코인과 정부 규제를 다 이해하는 윙클보스 형제 같은 기업가가 없었다면, 미국에서의 비트코인 제도화는 속도가 훨씬 더뎠을 게 분명하다.

당국자들과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들, 투자자들 모두가 뱅킹 온 비트코인을 봤으면 좋겠다. 싸우기에는 우리는 많이 뒤처져 있다. 합심해 따라가며 긍정적인 방향은 키우고 부작용은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참고로 이 영화가 주장하는 바는 위에서 언급한 얘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이 글이 영화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난한다면 달게 받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