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커’s Crypto Story] 지난해 9월, EOS 개발사인 블록원에게 호재 아닌 호재가 터진 바 있습니다. SEC가 블록원(Blockone)에 24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것입니다. EOS 커뮤니티에서도 해당 결과를 호재로 받아들였습니다. 벌금 부과가 왜 호재가 되는지 의아한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어차피 제도권의 규제가 한 번은 들어올텐데 이 정도에 그쳤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EOS 프로젝트가 약 1년간 진행한 ICO(암호화폐공개)에서 모금한 금액이 40억 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미미한 액수죠. 업계에서도 SEC의 조치로 인해 되레 EOS의 잠재적 악재가 해소됐다고 진단했습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얼마전 SEC와의 공방전으로 프로젝트 중단 의사를 밝힌 텔레그램(Telegram) 블록체인 프로젝트 ‘톤’과 견주어 보면, 확실히 벌금 2400만 달러는 문자 그대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톤의 ICO 모금액은 17억 달러로 EOS보다 못 미칩니다. 물론 톤과 비교했을 때 EOS는 탈중앙 네트워크 이슈가 있지만, 운영사가 뚜렷하게 존재하다는 점에서 언제든 강력한 규제를 맞을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문제는 다 끝난 줄 알았던 EOS의 ICO 법률 논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손길에서는 일단 벗어났지만, 외부 로펌의 소송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는 로슈 시룰릭 프리드먼(Roche Cyrulnik Freedman)이라는 로펌이 블록원을 비롯한 암호화폐 업체 11곳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고소 사유는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입니다. 현재 블록원을 제외한 고소 명단에는 바이낸스·트론·시빅·비트멕스 운영사 HDR글로벌트레이딩·카이버네트워크·스테이터스·비박스·퀀트스탬프·뱅코어·쿠코인 등 유명 프로젝트들이 올라있습니다.

#고소장을 넘어 집단소송으로

고소장 제출 한 건 정도는 사실 큰 문제라고 볼 순 없습니다. 더군다나 블록원만을 향한 고소장도 아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EOS 초기 토큰 투자자들이 강력한 변호인단을 필두로 지난 5월 18일(현지시간)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에 있습니다. 물론 고소 대상도 블록원 단독입니다. 해당 집단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 대표는 암호화폐 펀드 ‘LLC’로 알려져 있습니다.

집단소송이 다른 소송과 궤를 달리하는 것은 성사 조건에 진입장벽이 있을 뿐만 아니라, 승소할 경우 소송을 신청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피고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스타벅스가 얼음을 많이 넣어 판매한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에 걸려 500만 달러를 보상한 사건이 대표적 사례죠. 한마디로 소송을 제기한 소수의 피해자가 다른 사람의 피해까지 환산하는 방식입니다. 해당 소송이 원고 측의 승소로 끝날 경우, 블록원이 물어내야 할 보상금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입니다.

#원고 측 “블록원 출금액, ICO 모금 총량의 90% 육박”

원고 측의 주된 입장은 지난 4월 블록원이 받은 고소장 내용과 유사합니다. 초기 투자자들에게 미등록 증권을 판매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추가되는 부분은 ICO 당시 EOS에 관한 허위 사실과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이 대목에서 ICO 모금 불투명성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블록원이 ICO 시작 5일 후부터 계속해서 자금을 인출했다는 것입니다. 원고 측에 따르면 ICO 기간 동안 블록원이 인출한 토큰 총량은 전체 모금액의 90%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블록원이 평균 3~4일에 한 번 꼴로 자금을 인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원고는 “ICO 기간 중 자금 인출이 명시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인출된 자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용됐는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인위적으로 EOS 토큰 수요를 부풀려 투기를 부채질하는데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법률 추세가 원고 측 날개 달아준다?

이제부터는 암호화폐 미디어 더블록(Theblock)에서 기고 활동을 하고 있는 스테판 펠리(Stephen Palley) 앤더슨 킬 로펌(Anderson Kill law firm) 파트너 변호사의 말을 빌려보겠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최근 미국 법률 추세로 인해 원고가 유리한 입장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합니다.

원래 미국증권법 10b-5에는 “원고는 피고가 중요한 사실에 대해 허위 표시 또는 누락을 하였고, 원고가 이를 신뢰하여 거래하였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원고가 사실을 입증하려면 피고의 허위 행위를 믿고 거래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기 힘든 금융 시장 특성상, 매매 과정에서 원고가 피고의 행위를 신뢰하고 거래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집단소송이 인정되려면 다수성·공통성·전형성·적절성이라는 4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허위 행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공통성이 어긋날 수 있습니다. 공통성이란 소송 구성원들 사이에 공통의 문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예컨대 같은 원고 집단 내에서 구성원 A와 B가 동일하게 피고의 문서를 보고 투자했다면, 공통성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공통성 기준은 10b-5의 허위공시 대목으로 넘어가면 보다 엄격해집니다. A와 B가 똑같은 피고 문서를 보고 투자했더라도, 피고 측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서로 다르다면 공통성 기준에서 탈락됩니다.

이처럼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다 보니 허위 표시 관련 공방전에서 원고 측이 승소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펠리 파트너 변호사는 1988년 시장사기이론(Fraud on the market theory)이 인정되면서 해당 구조가 바뀌게 됐다고 합니다. 시장사기이론은 “주식과 같은 효율적 시장에 허위 표시가 있는 경우, 증권의 시장 가격은 그러한 허위 표시를 반영한 가격이기 때문에 증권을 거래한 자는 해당 표시를 신뢰했다고 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곧, 시장사기이론이 인정되는 한 원고는 공개 시장에서 허위 표시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입증할 의무가 없습니다. 이미 증권 매매 자체에 허위 표시 의존 여부가 녹아 들어 있기 때문이죠. 펠리 파트너 변호사는 특히 2014년 핼리버튼(Haliburton)의 회계부정사건 당시 미국연방대법원이 시장사기이론을 재확인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원고 측에 유리한 지금의 구조가 확립됐다고 말합니다. 핼리버튼은 전 미국 부통령 딕 체니(Dick Cheney)가 운영했던 군납기업 및 석유시추기업입니다. 당시 시장사기이론이 깨질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으나, 미국연방대법원이 시장사기이론을 지지하면서 지금의 구조가 더 공고해진 셈입니다.

펠리 파트너 변호사는 이와 같은 시장사기이론이 블록원 집단소송전에도 적용될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주식과 같은 효율적 시장에 허위 표시가 있는 경우’라는 표현이 애매하긴 하지만, ICO는 기본적으로 공개 시장이라는 점에서 해당 법률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블록원의 허위 표시 정황이 포착될 경우, 원고 측이 ICO 참여를 통해 토큰을 매수한 것 자체가 증거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SEC의 조치도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울러 펠리 파트너 변호사는 SEC의 지난해 벌금 조치가 오히려 블록원에게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벌금 조치에 응했다는 것은 SEC가 EOS ICO에 엄포를 놓았던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를 인정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법률상 금반언(Estoppel, 먼저 한 주장에 반대되는 진술을 나중에 하는 행위 금지) 원칙에 들어가므로, 향후 블록원이 “그때 벌금을 낸 것은 잘못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호소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원고 측 변호인단의 스펙도 블록원에겐 악재입니다. 펠리 파트너 변호사의 분석에 따르면 원고 측 로펌인 그랜트&아이젠호퍼(Grant&Eisenhofer P.A.)는 베테랑으로 구성된 전문 인력일 뿐만 아니라, 소송을 장기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자본력을 갖췄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집단소송은 블록원에겐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전망입니다. 흔들리는 개발사와는 별개로 EOS 커뮤니티가 어떤 행보를 이어나갈지도 중요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상혁 기자 park.s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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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디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