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심영재 특파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내부에서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가 추진하는 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인사·정보기술(IT) 등 지원 기능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지역 연방준비은행의 독립성과 권한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최근 취임한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개혁 지향적 연준’을 예고한 가운데 이번 논쟁이 향후 연준 지배구조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3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올해 봄 연설을 통해 연준 시스템 내 중복 업무를 줄이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개혁안을 제안했다. 핵심은 현재 미국 전역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이 각각 수행하는 인사(HR), 정보기술(IT), 조달 등 일부 후선 지원 업무를 특정 연은으로 집중시키는 것이다.
월러 이사는 이를 통해 납세자 부담을 줄이고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4월 연설에서 “자율성은 중요하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비효율적 중복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우리는 미국 국민에게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준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부 연준 관계자들은 이번 개편이 장기적으로 지역 연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의사결정 권한을 워싱턴 본부로 집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들은 개편 논의 과정에서 12개 지역 연은 총재들 사이에 업무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으며 월러 이사와의 긴장도 높아졌다고 전했다. 이들은 효율성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지역 연은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내부 관계자들은 월러의 추진 방식이 지나치게 빠르고 충분한 합의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논란은 케빈 워시 의장 취임과 맞물리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워시는 지난달 백악관 취임식에서 “개혁 지향적(reform-oriented) 연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연준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지역 연은 권한 축소 논의가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연준의 지역은행 체계는 1913년 연방준비법 제정 당시부터 미국 각 지역의 경제 상황이 통화정책에 반영되도록 설계됐다.
현재 세인트루이스, 샌프란시스코, 댈러스 등 12개 지역 연은은 현금 유통, 은행 간 결제, 지역경제 조사, 통화정책 집행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지역 연은 총재들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연준 이사들과 달리 각 지역 연은 이사회가 선임하기 때문에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장치로 평가받는다.
로레타 메스터 전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는 블룸버그에 “지역 연은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결국 지역 연은 체계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며 “이는 미국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스틴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도 과거 인터뷰에서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비정치적 지역 연은 인사들은 연준에 독립적인 시각을 제공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반면 월러는 지역경제 조사와 통화정책 관련 기능은 각 지역 연은에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연설에서 “지역 관점과 지역 연은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과 개혁안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번 개편이 현실화될 경우 현재 약 2만명 규모인 지역 연은 인력 일부가 감축될 가능성도 있다. 또 일부 의사결정 권한이 다른 지역 연은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지역 연은 총재들과 월러 이사가 효율성과 지역 구조 강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12개 지역 연은 총재들은 최근 직원들에게 공동 이메일을 보내 “변화는 불확실하게 느껴질 수 있다”면서도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들은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직접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지역 연은의 역할 유지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이번 논쟁은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연준의 독립성과 지배구조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연준 개혁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향후 지역 연은의 권한과 역할이 어떻게 조정될지 금융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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