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지분 투자·토큰증권 경쟁 가속…블록체인, 전통 금융 인프라로
[블록미디어 김해원 기자] 증권업계가 블록체인을 축으로 한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거래소 지분 투자부터 토큰증권(STO) 플랫폼 구축까지 전통 금융이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 수용하면서, 블록체인이 탈중앙화 금융의 상징이 아니라 제도권 금융 인프라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들은 최근 디지털자산 거래소 지분 투자와 토큰증권 플랫폼 구축에 연이어 나서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2월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소 코빗 지분 92.06%를 약 1335억원에 취득하며 전통 금융사 가운데 처음으로 거래소를 직접 보유하게 됐다. 한화투자증권은 두나무 지분을 5.93%에서 9.84%로 확대해 3대 주주가 됐고, 하나금융그룹은 하나은행을 통해 두나무 지분 6.55%를 약 1조33억원에 인수했다. 삼성증권·삼성SDS·삼성카드는 컨소시엄 형태로 두나무 지분 4% 인수에 나섰으며, 한국투자증권은 글로벌 거래소 OKX와 함께 코인원 지분 인수를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거래소 투자는 단순 재무투자가 아니라 디지털자산 사업 진출을 위한 플랫폼 선점 성격이 강하다”며 “향후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 시장이 본격화되면 거래소가 핵심 금융 인프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블록체인 사업 가운데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토큰증권이다. 현재 국내 증시는 거래 체결 후 결제 완료까지 이틀(T+2)이 소요된다. 거래소·증권사·예탁결제원 등 여러 기관이 중앙화된 시스템을 통해 소유권과 결제 정보를 순차적으로 확인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반면 토큰증권은 분산원장을 활용해 거래와 결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고, 투자자 지갑으로 자산을 직접 이전할 수 있다.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배당과 정산을 자동화하는 것도 가능해, 기술적으로만 보면 기존 증권시장보다 훨씬 효율적인 인프라로 평가된다.
다만 시장이 그려가는 방향은 초기 블록체인이 제시했던 ‘완전한 탈중앙화 금융’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비트코인은 누구나 지갑을 만들고 자유롭게 전송할 수 있지만, 증권은 투자자 보호와 고객확인(KYC), 자금세탁방지(AML), 공시, 세금, 거래 감시 등 강력한 규제를 받는 금융상품이다. 규제당국이 토큰증권이 누구의 지갑으로든 자유롭게 이동하는 완전 온체인 시장을 허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이 토큰증권 발행과 유통을 엄격히 분리하는 구조를 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거래시간 역시 비슷하다. 기술적으로는 24시간 거래가 가능하지만, 시장 감시와 가격 안정성, 청산 체계 등을 고려하면 현행 증권시장과 유사한 형태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임병화 성균관대학교 핀테크융합전공 교수는 “국내 토큰증권 시장은 당분간 현재 주식시장과 유사한 거래 구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예탁결제원 등 기존 증권 결제 인프라를 배제하고 시장 전체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토큰증권 시장은 탈중앙화 금융(DeFi)보다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중앙화 금융’ 형태로 안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향후 투자자들은 메타마스크를 설치하거나 개인키를 직접 관리하기보다, 지금의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안에서 토큰증권을 사고팔게 될 공산이 크다. 블록체인은 백그라운드에서 작동하지만, 사용자는 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구조다.
해외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전략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개인 투자자 커뮤니티를 우선 공략하기보다 증권사·자산운용사·은행 등 전통 금융기관과의 협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분위기다. 솔라나·아발란체 등이 신한·KB국민 등 국내 금융사와 협력을 확대하는 것도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시장의 중심축이 리테일에서 기관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4월 열린 ‘CIS 2026’ 행사에서 최영진 한화자산운용 부사장은 “생태계가 허가형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며 “전통 금융과 디파이 시장 간 코파운딩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전통 금융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블록체인은 전통 금융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토큰증권을 블록체인의 미래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다. 블록체인이 기존 금융을 완전히 대체하는 ‘혁명’이라기보다, 기존 금융 인프라에 흡수돼 제도권 안에서 재구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중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토큰증권이 도입되면 거래 시간과 방식 등 기존 증권시장의 관행은 상당 부분 바뀔 수밖에 없다”며 “24시간 거래와 낮은 비용, 자산의 세분화 거래 등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효율성은 결국 금융시장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완전한 탈중앙화보다는 기존 금융 시스템이 블록체인의 효율성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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