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김해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새 행정명령이 미국 금융산업 지형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핀테크 기업에는 제도권 진입 기회가 확대되는 반면, 금융 안정성과 소비자 보호를 둘러싼 우려도 커지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각) ‘금융기술 혁신의 규제 프레임워크 통합(Integrating Financial Technology Innovation into Regulatory Frameworks)’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디지털자산과 핀테크 기업의 금융 인프라 접근성을 확대하고 규제 절차를 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테이블코인·핀테크 업계 수혜
가장 큰 수혜 업종으로는 스테이블코인 업계가 꼽힌다. 행정명령은 디지털자산 및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공식적인 핀테크 범주에 포함시켰다. 특히 연방준비제도(Fed)가 비은행 금융기관의 연준 계좌 직접 접근 허용 여부를 120일 내 검토하도록 지시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준은 은행들이 중앙은행 결제 시스템에 직접 연결돼 자금을 이동시킬 수 있는 이른바 ‘마스터 계좌(master account)’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마스터 계좌 접근 권한은 전통 금융기관 중심으로 제한돼 있지만, 최근 디지털자산 거래소와 핀테크 기업들이 접근 확대를 요구해왔다.
실제로 디지털자산 거래소 크라켄(Kraken)은 지난 3월 연준 마스터 계좌를 부여받아 중앙은행 도매 결제 시스템인 ‘페드와이어(Fedwire)’ 접근 권한을 확보했다. 디지털자산 기업 리플(Ripple)과 앵커리지 디지털(Anchorage Digital), 송금 핀테크 기업 와이즈(Wise) 등도 마스터 계좌 확보를 추진 중이다. 연준은 지난해 12월에도 크라켄 사례와 유사한 제한적 결제 계좌 모델 도입 가능성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선 바 있다.
업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연준 계좌를 직접 확보할 경우 사실상 중앙은행 수준의 신뢰도를 갖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준비금을 상업은행에 예치하는 구조였지만, 향후에는 중앙은행 결제망과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핀테크 업계에도 호재다. 현재 차임(Chime), 로빈후드(Robinhood), 캐시앱(Cash App) 등은 은행 라이선스를 가진 스폰서 은행을 통해 결제망에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행정명령은 미국 통화감독청(OCC)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은행 인가 절차 간소화를 요구하면서 핀테크 기업의 직접 은행화 가능성을 키웠다.
또한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기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뿐 아니라 신규 금융권 참여자들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규제 수혜는 결국 써클과 코인베이스가 가장 크게 받게 되겠지만,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 중인 금융업체들도 빠르게 치고 올라올 수 있다”며 “예금토큰과 토큰증권 인프라를 제공하는 시큐리타이즈(Securitize) 같은 기업들에도 관심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자 보호·금융 안정성 우려도 확대
다만 시장에서는 규제 완화 속도가 빨라질 경우 이용자 보호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연준 결제망에 직접 접근하게 되면 사실상 은행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지만, 동일한 수준의 자본 규제와 예금자 보호 장치를 적용받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의 안전성, 상환 의무, 이용자 자산 분리 보관 등을 핵심 쟁점으로 논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앙은행 결제망 접근이 허용될 경우 발행사 신뢰도가 높아지는 만큼, 준비금 실사와 공시 의무도 함께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핀테크 기업들의 은행화가 가속화되면 금융 소비자 보호 책임 범위도 확대될 전망이다. 기존에는 스폰서 은행이 규제 책임을 상당 부분 부담했지만, 향후 핀테크 기업이 직접 결제·예금 기능을 수행할 경우 자금세탁방지(AML), 고객확인(KYC), 사이버보안, 사고 발생 시 보상 체계 등을 자체적으로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행정명령이 단순한 규제 완화라기보다 디지털 금융 산업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제도권 진입 문턱이 낮아지는 대신 감독 강도 역시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테더나 써클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연준 결제망에 직접 연결되면 이용자들은 은행과 유사한 안정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실제 예금자 보호나 건전성 규제는 동일하지 않아 새로운 형태의 그림자금융이 생길 수 있고, 뱅크런이나 디지털런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90일·120일 단위로 추진…연말 제도 윤곽 나올 듯
한편 이번 행정명령은 단계별 일정에 따라 추진된다. 우선 행정명령 발효 후 90일 이내에는 연준을 포함한 6개 연방 금융규제기관이 기존 규제와 감독 체계를 점검해 핀테크·디지털자산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을 식별하는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연방준비제도(Fed), OCC, FDIC뿐 아니라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등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 기관은 인허가 절차, 결제망 접근 제한, 디지털자산 관련 감독 기준 등을 재검토하게 된다.
이어 120일 이내에는 연준이 비은행 금융기관의 마스터 계좌 접근 허용 여부와 관련한 정책 검토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 시점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와 핀테크 기업의 제도권 편입 가능성을 가늠할 첫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하반기에는 실제 제도 개편 작업과 시범 사업이 병행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DTCC의 토큰증권 파일럿 서비스와 맞물려 스테이블코인 결제, 토큰화 증권, 예금토큰 등 디지털 금융 인프라 실험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 센터장은 실제 이용자 가치가 가시화되는 시점으로 오는 7월 예정된 미국 예탁결제기관 DTCC의 토큰증권 파일럿 서비스를 꼽았다. 그는 “코인베이스도 주식 토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현재는 미국 외 이용자 중심이라 시장 활성화가 제한적”이라며 “미국 개인과 법인이 참여하는 DTCC 기반 토큰증권 시장이 어떤 모습으로 형성될지는 7월 이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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