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미국 채권시장이 중동 전쟁발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이며 ‘고금리 장기화’의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미 재무부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20년 만의 최고치인 5% 선을 위협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차입 비용 상승 압력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에… ‘인플레 파이터’로 돌아서는 채권시장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과 금융시장에 따르면 미 국채 가격은 최근 1년 만에 가장 가파른 하락세(국채 금리 폭등)를 기록했다. 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다시 급등한 데다, 지난달 미국의 물가 지표가 예상치를 웃돌며 가속화된 점이 채권 매도세를 촉발했다. 영국의 길트채와 일본의 JGB(국채) 금리도 일제히 치솟는 등 글로벌 채권시장이 전방위적인 충격을 받았다. 이번 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이 같은 채권 매도 폭증 현상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특히 금융시장의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불과 지난 2월 말까지만 해도 시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란 전쟁 이후 흐름은 180도 뒤집혔다. 현재 채권 트레이더들은 내년 3월 연준의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Lock)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로 인한 원유 공급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채권 금리의 하방 경직성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연 4.07%로 2025년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10년물 금리는 지난 한 주 동안에만 약 0.25%포인트 급등한 연 4.59%를 기록했다.
프리야 미스라 제이피모건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글로벌 장기 금리가 서로를 끌어올리는 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호르무즈 해협이 열리지 않는 한 금리 상단은 위로 열려 있다”고 우려했다.
차기 연준 의장 워시의 시험대… 트럼프 ‘조기 인하’ 압박에 제동
이 같은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는 오는 2026년 하반기 취임을 앞둔 케빈 워시 차기 연준 의장 내정자에게 상당한 정치·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취임 직후 조기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부양을 뒷받침해 주길 기대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트럼프 정부의 대규모 재정 적자 우려와 중동 리스크 속에서도 굳건한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더해지면서, 투자자들은 장기 국채를 보유하는 대가로 더 높은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지난주 진행된 미 국채 입찰 결과는 이 같은 냉랭한 기류를 그대로 반영했다. 30년물 국채 입찰 금리는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연 5%대에서 결정됐으나, 수요는 평이한 수준에 그쳤다. 3년물과 10년물 입찰 역시 투자자들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케빈 플래너건 위즈덤트리 투자전략 부문장은 “현재 시장 환경에서 투자자들이 새 국채를 인수하기 위해 더 많은 양보(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내러티브가 시장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으며, 차기 소비자물가지수(CPI)가 2023년 이후 최고치인 연 4%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역했다.
‘숏(매도)’ 베팅 13주래 최고… “지금 진입하긴 이르다” 관망세 우세
시장에서도 미 국채의 추가 하락에 베팅하는 세력이 급증했다. 제이피모건이 실시한 최신 조사에 따르면 미 국채에 대한 숏(매도) 포지션은 최근 13주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연초만 해도 2%에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하던 미 국채 지수는 현재 연간 기준 마이너스(-) 수익률로 돌아선 상태다.
이번 주 채권시장의 눈은 오는 수요일 공개되는 연준의 4월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에 쏠려 있다. 매파(통화 긴축 선호) 성향 위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커졌는지가 핵심이다. 이미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경제 과열 가능성을 경고했고, 마이클 바 연준 부의장 역시 인플레이션을 경제의 ‘압도적인 위험’으로 규정한 바 있다.
채권 전문가들은 당분간 채권 매수를 보류하고 변동금리부채권(FRN) 등으로 대피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플래너건 부의장은 “10년물 국채 매수에 나서는 것은 너무 빠른 것보다 차라리 늦는 게 낫다 심리적 저항선인 4.5%를 넘어섰기 때문에, 걸프만에서 교전이 재개돼 유가가 치솟을 경우 전고점인 연 4.62%까지 직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