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최근 잇따르는 구조조정의 원인으로 인공지능(AI)을 지목하고 있지만, 실제 미국 고용 시장의 둔화는 AI 때문이 아니라는 중앙은행 연구 결과가 나왔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은 AI 취약 직종의 구인 감소세가 챗GPT 출시 이전부터 시작됐으며, 최근의 고용 시장 위축을 AI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챗GPT 출시 전부터 꺾인 채용… 시점의 모순
17일(현지시각) 뉴욕 연은 연구진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AI 자동화에 가장 취약한 직종(컴퓨터 프로그래머, 고객 서비스 상담원, 데이터 입력원 등)의 채용 공고 추이를 분석한 결과 대중의 인식과 정반대의 결과가 도출됐다.
만약 AI가 일자리를 빼앗은 주범이라면,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며 AI 열풍이 본격화된 2022년 말 이후부터 관련 직종의 구인이 급감했어야 했다.
그러나 데이터 분석 결과, 이들 직종의 채용 공고 감소세는 챗GPT가 등장하기 훨씬 전인 2022년 초부터 이미 시작됐다. 코로나19 특수가 끝나고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채용을 줄인 시점과 일치한다.
연구진은 “AI 취약 직종과 일반 직종 간의 채용 격차는 2022년 이전에 발생했으며, 챗GPT 출시 이후 이 추세가 더 벌어지지 않았다”라며 “오히려 2023년 이후에는 격차가 안정화됐는데, 이는 AI가 점진적으로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통념과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AI 때문에 신입 안 뽑는다?”… 청년 취업난도 본질은 ‘경기 한파’
보고서는 “AI 쇼크로 인해 청년층과 대졸 신입사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세간의 우려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연구진이 채용 공고를 무경력(신입)과 경력직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AI 취약 직종에서의 고용 둔화는 특정 직급에 쏠리지 않고 전 직급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청년 구직자들이 취업에 애를 먹는 것은 AI라는 기술적 충격 때문이 아니라, 기업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생긴 전반적인 고용 시장의 냉각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미 정부의 공식 통계에서도 미국 전반의 해고율은 2021년 이후 현재까지 0.9%~1.2% 사이의 역사적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AI로 인한 대량 해고 대란’은 착시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자리 빼앗은 게 아니라 빈자리 메운 것”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분석도 뉴욕 연은과 비슷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아직 기업들의 실제 AI 활용도가 경제 전반을 흔들 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술 도입 시기가 ‘교묘하게 좋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이클 피어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AI 도입이 활발한 정보(IT) 섹터의 경우 고용과 해고가 동시에 급증하는 ‘노동 회전율’만 치솟았을 뿐, 순고용 수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엘시 펭 골드만삭스 리서치 이코노미스트는 “AI 대체 가능성이 높은 상당수 직종은 원래 팬데믹 이후 극심한 인력 부족(구인난)을 겪던 분야였다”고 분석했다. 즉, AI가 살아있는 사람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없어 비어있던 자리를 먼저 메우는 완충재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이 덕분에 노동 시장의 충격과 일자리 미스매치(수급 불일치)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의 고용 둔화가 AI 때문은 아닐지라도, 미래의 경고등까지 꺼진 것은 아니라고 조언한다. 펭 이코노미스트는 “도입 초기 단계는 운 좋게 구인난과 맞물려 지나갔지만, 기술이 더 깊숙이 침투할 다음 단계에서는 노동 인력의 본격적인 기술 적응과 체질 개선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