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월수제비, 바다에 대한 갈망 풀어주는
투명한 국물과 부드러운 질감으로
일상의 중력 너머의 안도감 줘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지난 4월 말 제주에 다녀와서 며칠 동안 제주의 바다 색깔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제주를 많이 갔지만 4월 말에 방문한 적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제주 바다 색깔은 처음이었다. 구글에 검색해보니 내가 찍은 제주 바다의 색깔을 ‘페일 시안(Pale Cyan)’이라고 불렀다. 시안은 파란색과 녹색의 중간인 짙은 하늘색을 뜻한다. 우리말로 옅은 하늘색쯤이다.
제주에서 돌아와 빡빡한 일정 속에 부대끼다 보니 제주 바다에 대한 갈망은 더 커졌고 이를 해소할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음식도 해결책의 하나였다. 제주 바다에 대한 갈망을 풀 음식으로 복국, 동치미 막국수, 바지락 칼국수, 수제비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정답은 이미 수제비로 쏠려 있었다.
내가 정한 정답이지만 특이했다. 왜 수제비일까? 나는 보통 여행에서 돌아오면 아주 매운 떡볶이나 마라소스에 당면을 비벼 먹는다. 외국에서 돌아오면 물냉면을 주로 먹는다. 그렇지만 수제비를 떠올린 것은 이번 제주 여행이 처음이었다. 비도 오지 않는데말이다.
바다가 그리운데 왜 수제비를 찾았을까?
수제비를 먹으러 간 곳은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의 산월수제비였다. 마침 근처에서 미팅이 있어서 미팅을 마치자마자 무작정 가봤다. 12시10분쯤에 도착해서 ‘웨이팅을 해야겠구나’라고 지레짐작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자리가 있었다. 산월수제비는 ‘맛의 전당’쯤인 은마아파트 지하상가에서도 가장 웨이팅이 많은 식당의 하나다.
나는 수제비를 잘 먹지는 않는 편이다. 수제비는 멸치육수와 감자를 넣고 손으로 반죽을 뜯는다. 이런 간편함 때문에 수제비는 보리밥처럼 한때 가난한 음식의 하나로 꼽혀왔다. 국수의 틀도, 얇은 반죽과 정교한 제면기술도 필요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멸치와 다시마로 간편하게 낸 육수만 있으면 누구든 끓여낼 수 있다.
어릴 때 수제비를 많이 먹었다. 1970년대 수입산 밀가루 덕에 밀가루는 가격이 저렴해 수제비를 비롯해 분식을 많이 먹었다. 오죽하면 국가에서 분식을 권장했을까? 나의 어머니 역시 자주 감자를 잔뜩 넣어 수제비를 끓여주셨다. 우리집은 오남매로 형제가 많아 늘 형제간에 먹는 것을 놓고 경쟁이 치열했다. 대학에 가보니 학교 근처에서도 수제비를 많이 팔았다. 가격도 500원쯤으로 김밥과 비슷했다. 수제비가 김밥보다 포만감이 크니까 수제비를 자주 먹었다.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내 명의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뒤 수제비를 먹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어릴 때 많이 먹기도 했고 사회에 나와보니 스테이크나 민물장어처럼 맛있고 기름진 음식이 너무 많았다. 수제비는 아주 가끔 비가 올 때 파전과 함께 먹거나 혹은 시내의 고궁을 걷다가 항아리 수제비집을 갈 때 아니면 거의 먹지 않았다. 수제비는 ‘고궁’이나 ‘비’처럼 뭔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에서 찾게 되는 특이한 기제(機制)를 가진 음식으로 나에게 남았다.
이런 내가 제주 바다와 관련된 음식으로 수제비를 떠올린 것은 나에게도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제주 향토음식인 한치물회라든지 갈치국이라면 모를까? 어릴 때 흔하게 먹던 수제비라니. 그러니까 ‘제주바다’에서 ‘제주’가 나의 무의식을 자극한 것은 아닌 것이다. ‘바다’가 나를 자극했던 것이다. 정확하게는 바다색이었을 것이다. 페일 시안의 바다색은 도대체 나의 어떤 무의식이나 상상력을 건드린 것일까? 나의 무의식이나 상상력 너머에서 수제비는 어떤 작용을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산월수제비를 찾았다. 내가 생각이 많은 사람이지만 나도 이런 생각을 하며 음식점을 찾아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보통 비가 오니까 뭐, 날씨가 더우니까 뭐 이 정도의 공식으로 음식점을 찾지 않나?

경계없음에서 오는 수제비의 친근감
그리고보니 내가 제주바다 말고 수제비의 효용성을 떠올렸던 때가 한번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했을 때 샤르데나 출신의 한 셰프가 “사르데냐 소울푸드가 뇨끼”라며 조개를 써서 뇨끼를 만들어준 적이 있었다.샤르데냐는 시칠리아 다음으로 이탈리아에서 큰 섬이다. 코발트빛 바다가 아름다워 이탈리아인들이 선망하는 여름 휴가지의 하나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그때 내 생각에는 뇨끼를 만드는 정성의 반의 반만 들여 만든 조개 감자 수제비가 1백배는 더 맛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맑고 투명하고 하늘하늘거리는 수제비가 뇨끼보다 더 바다와 가깝고 더 원초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 수제비 한번 먹어봐야겠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수제비가 김치나 된장처럼 내 본능적인 미각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수제비는 죽처럼 경계성이 모호한 음식이다. 곡물인데 곡물이 아닌 수평선 같은 원초적인 물의 음식이다. 인간의 의지와 시스템이 거의 개입하지 않아 정해진 모양조차 없다. 온갖 기발하고 정교한 모양으로 나오는 빵과 파스타와 대척점에 있는 곡물 요리다. 한국인이 아프면 흰죽을 찾는 것은 흰쌀 너머 전분이 가지고 있는 비정형성의 원초성 덕분일 것이다.
거기에 수제비의 국물은 투명하다. 맵고 기름진 육수로 끓여내는 수많은 면과 국밥류와는 다르다. 수제비의 색깔은 한없이 투명하고 반죽은 얇게 하늘거린다. “두텁고 중후한 게 맛있다”라는 음식의 보편적 법칙에서도 꽤나 자유롭다. 수제비는 그래서 물을 떠올리게 한다. ‘물의 음식’인 수제비는 음식의 원류로 회귀하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물의 특성 덕분이다. 지구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왔다. 포유류인 인간이 어머니 자궁의 양수에서 생명을 얻는 것은 생명의 시원이 물에 있음을 증명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비가 내리면-대지가 물로 덮이면-우리는 수제비를 찾는지도 모른다.
산월수제비의 가격은 8천원이다. 요즘의 비싼 물가를 고려하면, 또 이 곳이 강남 한복판인 대치동에 위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착한 가격이다. 난 6천원 정도때부터 먹었던 것 같다. 또 이곳은 테이블이 없다. 다 옛날 포장마차나 떡볶이집처럼 카운터석이다. 어릴 때부터 저런 자리에 앉아 순대와 떡볶이를 먹고 컸던 사람으로 참 맘에 든다. 시장 한복판에 있어 더 예스럽다. 이런 정겨움도 수제비의 맛을 더했다.
나는 산월수제비를 아주 오랜만에 왔다. 2년은 된 것 같다. 깍두기 대신 열무김치를 준다. 여기서 열무김치는 처음 봤다. 날이 더우면 산월수제비를 거의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겉절이도 함께 준다. 무려 한국인이 담근 우리 김치만 2종류. 열무김치는 시큼했다. 그래서 맛있었다. 나는 열무김치를 무척 좋아한다. 내가 처음 담가본 김치도 열무김치였다. 여린 무의 청으로 담근 김치라는 열무김치는 봄부터가 제철이다. 무가 맛이 없어지는 요즘은 열무김치가 무김치인 깍두기보다 훨씬 맛나다. 산월수제비는 이런 계절성도 잘 반영하고 있는 집이었다.
수제비를 시켰는데 시키자마자 가져다준다. 운 좋게 자리에 앉자마자 모든 좌석이 만원이었고 기다리는 사람이 4~5명쯤 있었다. 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운이 좋았나’라는 안도감 덕에 또 향긋한 멸치 육수 냄새에 바다와 수제비의 연관성을 파헤칠 의지는 이내 사라졌다. 오뚜기 후추같이 공장에서 갈아 나온 후추를 살짝 넣었다. 맑은 국물이 파르르 떨린다.
나는 이 투명한 맑음 때문에 산월수제비 대신 근처의 영지 닭칼국수를 더 많이 다녔다. 영지의 닭칼국수는 아주 두텁고 중후하다. 이런 진한 육수에 반해 닭칼국수를 자주 포장해 갔다. 그리고 집에 가서 그 육수로 닭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영지 육수에는 닭한마리로는 낼 수 없는 진한 맛이 있다.
수제비는 나에게 치유와 회귀의 음식
그렇지만 그날은 산월수제비의 투명한 국물이 정겨웠다. 수제비 반죽의 하늘거림도 사랑스러웠다. 시큼한 열무김치도 좋았다. 그리고 함께 나란히 앉아서 수제비를 먹고 있는 나이 많은 사람들도 정겨웠다. 서울 살면서, 강남에 살면서 거의 느껴보지 못한 유대감이었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무거운 짐을 올리거나 길을 찾지못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이유가 이런 유대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토끼굴같은 서울도 나름 살만한 곳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오지랖이라고 지청구를 늘 주지만 나도 외국에서 수없이 길을 잃어봤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것뿐이다.
제주에 있던 5일간 나는 거의 서울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제주 바다는 그만큼 아름다웠고 공기는 깨끗했고 주변은 고요했다. 서울의 소음 따위를 떠올릴 이유가 없었다. 제주의 바다에서 나는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정화의 기운은 4월의 제주 바다색이라고 분석했다.
어쩌면 나는 제주에서 서울로 온 다음에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제주에서처럼 안전하고 평화로운 치유와 회귀의 모티프(motif)를 찾아다녔나보다. 제주에서 받은 치유의 기운은 금세 사라지고 감동적이었던 제주 바다빛은 이내 잊힐 것이 분명했으니까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아마 나는 그 망각 혹은 분리 또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최대한 늦추고 싶어 했고 그 조바심이 어릴 때 먹던 수제비를 떠올리게한 것이 아닐까. 수제비라는 어릴 적 내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안전하고 평화로운 음식을 말이다. 나의 무의식과 상상력의 원형이라는 검고 깊은 바다에서 수제비가 그렇게 아름답게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나도 그때서야 깨달았다.
■ 산월수제비 주소: 서울 강남구 삼성로 212-2 은마상가 지하1층(일요일 휴무)
■ 메뉴: 수제비, 섞어서, 칼국수(각 8000원)
*권은중 음식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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