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디지털자산 규제 명확성 강화하며 글로벌 표준 선점 박차
국내는 스테이블코인 논의에 머물러 기본법 논의 사실상 정체
“거래·수탁·발행 체계 정비 늦으면 시장 경쟁력 약화 불가피”
[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미국 의회가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시장의 규제 프레임워크인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 처리에 속도를 내며 글로벌 표준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록 올해 내 입법까지는 난항이 예상되지만, 규제 공백 해소를 위한 유의미한 첫발을 뗐다는 평가다.
반면,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디지털자산 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구체적인 입법 진척은 더딘 상태에 머물러 있다.
미국 중심의 디지털자산 생태계가 본격 가동될 시점에 국내 제도적 기반 마련이 지연될 경우,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물론 한국 시장이 해외 디지털자산 인프라를 단순 이용하는 소비 시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 이사회는 지난 15일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두나무 지분 228만4000주를 약 1조33억원에 인수하기로 의결했다. 이번 투자는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포함해, 급변하는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풀이된다.
같은 날 한국투자증권 또한 글로벌 거래소 OKX와 손잡고 코인원 지분 공동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전통 금융권이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업계와 대조적으로 국내 규제 체계는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클래리티 법안으로 디지털자산의 법적 근거와 관리 체계를 명문화한 것과 달리, 국내는 개별 가이드라인과 유권해석 등 단기적 처방에 의존하는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시장의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는 스테이블코인 분야에서 이러한 격차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미국에서 ‘클래리티 법안’이 통과될 경우,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와 준비금 운용 방식, 이자 지급 범위 등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명확히 규정될 전망이다.
반면 국내의 경우, 스테이블코인 발행에만 논의가 치중된 데다 대주주 지분 제한 등 쟁점 사안에 가로막혀 관련 입법 논의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정치권은 우선 6.3 지방선거 이후 조속히 논의를 재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해관계자 간의 쟁점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실질적인 합의안 도출까지는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문제는 입법 공백이 길어지는 사이 시장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소뿐 아니라 은행·증권사 등 전통 금융권 역시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 사업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제도 정비가 지연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은 이미 토큰화·실물자산(RWA) 분야에서 한발 앞서가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국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글로벌 자산 토큰화 시장 규모는 503억7000만 달러(약 75조원)에 달한다. 이 중 미국이 341억달러로 전체의 65.2%를 점유하며 사실상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자산별로는 주택담보대출·기업대출 등 신용자산 토큰이 51%(256억5000만 달러)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MMF 및 국채 기반 토큰이 28%(142억6000만 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MMF·국채 토큰 중 미국 국채의 비중이 91%에 육박할 만큼, 최근 미국 국채를 중심으로 한 토큰화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온체인 인프라 측면에서도 격차가 뚜렷하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은 이더리움 기반 머니마켓펀드(MMF)를 토큰화한 ‘마이 온체인 넷 일드 펀드(MONY)’를 출시했다. 미국 예탁결제청(DTCC)은 미국 국채 일부를 토큰화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운용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처럼 향후 미국의 규제 명확성이 더욱 공고해진다면, 미국 중심의 RWA 생태계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으며 한국을 비롯한 후발 주자들이 진입할 수 있는 틈새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클래리티 법안을 통해 거래·수탁·브로커·발행 주체별 책임 구조를 제도권 안에서 정리하려 하고 있지만, 국내는 여전히 업권 구분과 감독 체계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규제가 명확한 시장으로 사업과 자본이 이동하는 흐름은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스테이블코인과 RWA 시장은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산업인 만큼 초기 표준을 선점한 국가로 유동성과 프로젝트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입법이 계속 지연될 경우 한국 시장은 기술 개발보다는 해외 인프라를 단순 이용하는 소비 시장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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