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간의 충돌로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요동치는 가운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와 파키스탄이 이란과의 개별 협상을 통해 유조선 및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안전 통행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라크와 파키스탄이 이란과의 합의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에너지 수송로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이란이 해협을 단순히 봉쇄하는 단계를 넘어, 통과 선박을 선별적으로 통제하며 역내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풀이된다.
이라크·파키스탄, 이란과 ‘비공식 합의’… 유조선·LNG선 통과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는 최근 이란 측으로부터 초대형 유조선(VLCC) 2척의 안전 통행을 보장받았다. 각각 약 2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은 이 선박들은 지난 일요일 해협을 무사히 통과했다. 정부 예산의 95%를 석유 수출에 의존하는 이라크로서는 해협 봉쇄로 인한 경제 파탄을 막기 위해 이란과의 협상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역시 별도의 양자 합의를 통해 카타르산 LNG를 실은 운반선 2척을 확보했다. 여름철 냉방 수요 급증으로 전력난에 직면한 파키스탄은 이란과의 협상을 통해 연료 공급의 숨통을 텄다. 다만 이번 거래 과정에서 이란이나 이란 혁명수비대(IRGC)에 직접적인 현금 지급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이란은 선박의 목적지, 소유주, 화물 명세 등 상세 정보를 요구하며 ‘허가제’ 형태의 통행 관리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립적 통로에서 이란의 회랑으로”… 전략의 변화
전문가들은 이란의 전략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클라우디오 스토이어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 연구원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막는 것에서 통제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이제 호르무즈는 중립적인 통과 경로가 아니라 이란이 관리하는 회랑이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전쟁 전 한 달 평균 3000척에 달했던 호르무즈 해협 통행량은 현재 평시의 5% 수준으로 급감한 상태다. 이란은 통행을 허가하는 조건으로 선박의 상세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으며, 혁명수비대 해군이 지정한 항로로만 이동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에너지 시장 직격탄… 국제 유가 50% 폭등
이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글로벌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2월 말 분쟁 발생 이후 브렌트유 가격은 50% 이상 폭등했으며, 유럽과 아시아의 LNG 가격도 35~50%가량 치솟았다.
상황이 악화되자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이란과의 개별 접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컨설팅업체 MST 마퀴의 사울 카보닉 리서치 책임자는 “더 많은 정부가 통행을 위해 이란과 거래할수록,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영구적으로 통제한다는 관념이 고착화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란은 전쟁 종료 후에도 해협 통제권을 유지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이란은 제재 완화와 동결 자산 해제 등을 종전 조건으로 내걸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를 “쓰레기 같은 제안”이라며 일축해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