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월가에 ‘타코(TACO)’가 가고 ‘나초(NACHO)’의 시대가 왔다. 중동의 화약고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투자자들이 유가 상승과 금리 동결에 베팅하는 이른바 ‘나초 트레이드’에 올라타고 있다.
“호르무즈 열릴 일 없다”… 월가 점령한 ‘NACHO’ 신조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각) 뉴욕 금융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단연 ‘나초(NACHO)’였다. 이는 “호르무즈가 열릴 가능성은 없다(Not A Chance Hormuz Opens)”는 문장의 앞 글자를 딴 신조어다. 폐쇄에 따른 경제적 타격이 극에 달해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해협이 정상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을 담고 있다.
과거 시장에는 “트럼프는 결국 겁을 먹고 물러난다(Trump Always Chickens Out)”는 뜻의 ‘타코(TACO)’ 트레이드가 유행했다. 하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나는 타코 밈을 믿은 적이 없지만, 나초(NACHO)는 타당해 보인다”며 “봉쇄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훨씬 심각해지기 전까지 호르무즈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가 98달러·금리 4.4% 돌파… ‘금리 인하’ 기대는 증발
나초 트레이드의 징후는 지표로 확인된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2.8% 급등하며 배럴당 98달러 선에 마감했다. 채권 시장도 요동쳤다. 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4.411%까지 치솟으며 고금리 장기화 우려를 반영했다.
시장 참여자들의 시각도 급격히 냉각됐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트레이더들이 점치는 연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확률은 5% 미만으로 추락했다. 사실상 올해 안에 금리가 내려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지표 따로, 증시 따로… 반도체·AI가 이끄는 ‘디커플링’
역설적인 점은 이 같은 악재 속에서도 뉴욕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유가와 고금리라는 ‘이중고’를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열풍이 집어삼킨 형국이다.
이날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6.5%, 퀄컴이 8.4% 폭등하는 등 반도체주가 랠리를 주도했다. 이에 힘입어 S&P 500과 나스닥 지수는 나란히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롭 윌리엄스 세이지 어드바이저리 투자전략가는 “투자자들은 AI 투자 열풍이 에너지 가격 상승 압박을 압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실적도 탄탄하다. 1분기 실적 발표를 마친 S&P 500 기업들의 이익은 예상치를 18.2% 상회하며 시장의 낙관론에 불을 지폈다.
“공포가 사라진 시장이 위험”… 엇갈리는 전망
하지만 경고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란은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경제난에 직면했고,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쟁 전 3달러 미만에서 현재 4.52달러까지 치솟으며 서민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모건스탠리 자산관리 투자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포모(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위험을 무시하고 있다”며 “실물 경제 지표와 증시 사이의 괴리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