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강나연 에디터] 분산형 클라우드 컴퓨팅 네트워크 아카시 네트워크(Akash Network·AKT)가 글로벌 게이밍 브랜드 레이저(Razer)의 만우절 마케팅 캠페인을 위한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인프라를 5일간 운영했다고 지난달 4월30일 양사 공동 사례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운영 기간 중 사람의 수동 개입은 없었다. 이미지 한 장을 만드는 데 든 비용은 0.01달러, 사용자가 사진을 올리고 결과를 받기까지 평균 3.24초가 걸렸다.
이번 협업은 글로벌 소비자 브랜드가 자사 마케팅 인프라로 분산형 클라우드 컴퓨팅 네트워크를 채택한 첫 사례에 해당한다.
리테일·개발자 단계에서 기업 단계로 올라선 네트워크
아카시 네트워크는 분산된 클라우드 컴퓨팅 마켓플레이스다. 데이터센터나 개인이 보유한 그래픽카드(GPU)를 시장에 내놓고, 수요자는 입찰 방식으로 가장 싼 가격에 빌려 쓰는 구조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거래하는 구조라 아마존 웹서비스(AWS)나 구글 클라우드 같은 대형 클라우드 회사를 거치지 않는다. 시장 분석에 따르면 이런 구조 덕분에 가격이 일반 클라우드 대비 80~85% 가까이 저렴하다.

아카시 네트워크는 2020년 메인넷 출범 후, 2023년 GPU 슈퍼클라우드를 도입해 본격적으로 AI 워크로드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사용량은 꾸준히 누적됐다. 메사리(Messari)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GPU 사용량은 363대로 전년 대비 428% 증가했고, 일일 활성 리스 건수도 875건으로 74% 늘었다. 같은 분기 매출은 사상 최대인 72만2000달러를 기록해 전 분기 대비 144% 증가했다. 사용량과 매출이 동시에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기업 단위 도입 사례도 이미 누적돼 있다. AI 모델 배포 플랫폼 노드시프트(NodeShift)는 2025년 초부터 아카시 네트워크를 통해 엔비디아 H100·A100·H200 같은 데이터센터급 GPU를 기업 고객에게 공급하고 있다. 이 협업 과정에서 아카시 네트워크는 가상 사설 클라우드(VPC) 구성, 첨부 스토리지, 보안 멀티테넌시 같은 엔터프라이즈 환경 요구사항을 모두 통과시켰다. 2025년 3월 통합된 생성형 AI 플랫폼 엔비전 랩스(Envision Labs)는 아카시 네트워크 도입 후 GPU 비용을 30% 절감했고, 35개 이상 모델을 학습시키며 10만장 넘는 AI 이미지를 생성했다. 그 외에도 시지아 클라우드 랩스(Sigea Cloud Labs), 플래시백 랩스(Flashback Labs) 등이 자사 서비스를 아카시 네트워크 위에서 운영 중이다.
엔비디아(NVIDIA) 자체도 아카시 네트워크 생태계와 연결돼 있다. 엔비디아는 2024년 3분기 브레브닷데브(Brev.dev) 인수를 통해 아카시 네트워크 GPU 생태계를 강화했고, 2025년 GTC 콘퍼런스에서는 아카시 네트워크가 후원사로 참여했다.
레이저 마케팅 캠페인은 이런 누적된 기업 도입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그 의미가 다르다. 기존 사례 대부분이 AI 인프라 자체가 본업인 기업이었다면, 레이저는 글로벌 소비자 브랜드다. 마케팅 캠페인이 망가지면 브랜드 평판에 직접 타격이 가는 영역에서 5일간 문제 없이 운영을 마쳤다는 사실은 아카시 네트워크가 일반 기업 고객의 핵심 서비스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신호다.
특히 안정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트래픽이 가장 몰린 4월1일에 GPU가 자동으로 추가 투입됐고, 줄어들면 자동으로 빠졌다. 운영 기간 내내 엔지니어가 새벽에 호출당하는 일이 없었다. 일반 클라우드의 자동 확장 기능을 분산된 공급자 풀 위에서 그대로 재현했다는 의미다.
AVA Mini, 분산 GPU 위에서 이미지 한 장 0.01달러

AVA Mini는 레이저의 AI 캐릭터 ‘AVA’의 펫 버전이다. 사용자가 자기 반려동물 사진을 올리면, 그 사진을 닮은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캠페인은 3월31일 시작해 4월4일까지 진행됐고, 4월1일 만우절에 트래픽이 가장 많이 몰리도록 설계됐다.
캠페인 운영진이 풀어야 했던 숙제는 세 가지였다. 첫째, 비용이다. 일반적인 AI 이미지 생성 서비스는 한 장에 0.03~0.15달러를 받는다. 무료로 캠페인 규모를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단가다. 둘째, 트래픽이다. 자사가 보유한 컴퓨터로는 캠페인 동시 접속자를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셋째, 속도다. 사용자는 분 단위가 아닌 초 단위 응답을 기대한다.
해법은 레이저의 오픈소스 도구 ‘레이저 AIKit’과 아카시 네트워크의 매니지드 추론 서비스 ‘AkashML’을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AIKit이 AI 모델을 구동하는 역할을, AkashML이 그 도구를 전 세계 GPU에 분산 배치하고 트래픽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저 웹사이트 한 장이지만, 뒤에서는 전 세계에 흩어진 고성능 게이밍 그래픽카드 여러 대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
결과는 이미지 한 장당 비용 0.01달러, 평균 응답 시간 3.24초, 4월1일 피크 시간대 분당 30장 처리였다.
그렉 오수리(Greg Osuri) 아카시 네트워크 창립자는 “단가 구조가 이보다 더 잘 맞을 수 없다”며 “아카시 홈노드(Akash Homenode)와 레이저 제품으로 협업을 확장하는 것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번 사례는 아카시 네트워크의 토큰 경제 구조와도 맞물린다. 아카시 네트워크는 3월23일 ‘BME(Burn-Mint Equilibrium)’라는 새로운 토큰 경제 모델을 가동시켰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누군가 아카시 네트워크에서 GPU를 빌리려고 돈을 내면, 그 돈으로 자동으로 AKT 토큰을 사서 소각한다. 그 자리에 ‘ACT’라는 1달러짜리 가격에 고정된 정산용 크레딧이 생성돼 GPU 주인에게 전달된다. 정리하자면 네트워크에서 누군가 GPU를 쓸수록 시중에 유통되는 AKT 토큰의 양이 줄어드는 구조다. 토큰 양이 줄면 기본적으로 한 토큰당 가치가 올라가는 압력이 생긴다.
이전 모델에서는 결제를 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으로 할 수 있었다. 네트워크 사용은 꾸준히 늘었지만, AKT 토큰 자체에는 별다른 영향이 가지 않았다. BME는 이 단절을 메웠다. 레이저 같은 기업이 GPU 사용료를 지출하면 그 효과가 토큰 가격으로 직접 흘러 들어간다.
지표도 받쳐주는 모습이다. 아카시 네트워크는 2026년 1분기 보고서에서 분기 GPU 사용 지출이 사상 처음 500만달러(약 73억원)를 넘었다고 밝혔다. 아카시 네트워크는 같은 보고서에서 “2026년 1분기는 출범 이래 분기 기준 가장 활발한 네트워크 활동을 기록한 시기”라고 명시했다. AkashML은 오픈라우터(OpenRouter) 플랫폼에서 하루 17억 토큰을 처리해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를 추월했다. 사용량이 늘수록 토큰이 희소해지는 메커니즘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슷한 후속 채택이 이어질 경우, AKT 토큰 소각량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난다.
갖춰진 인프라, 확장의 다음 무대
레이저 사례가 보여주는 또 다른 측면은 아카시 네트워크가 그 사이 어디까지 갖춰져 있었는가다. GPU 카탈로그 자체가 다양해졌다. 레이저 캠페인에 동원된 RTX 4090·RTX 5090 같은 게이밍급 그래픽카드뿐 아니라, 노드시프트 사례를 통해 엔비디아 H100·A100·H200 같은 데이터센터급 그래픽카드도 마켓플레이스에 올라와 있다. AMD 칩도 2023년 말부터 지원되기 시작했고, 2026년 말부터는 엔비디아 GB200 그래픽카드 약 7200대가 ‘스타클러스터(Starcluster)’ 프로그램을 통해 추가될 예정이다. 게이밍 캠페인부터 대형 언어모델 학습까지 워크로드 종류에 맞춰 그래픽카드를 골라 쓸 수 있게 된 셈이다.
기업 환경에서 필요한 기능들도 단계적으로 추가됐다. 인스턴스가 재시작돼도 데이터가 그대로 유지되는 영구 저장 공간 기능, 웹 서버나 API 호스팅에 필수적인 고정 IP 임대 기능 같은 미션 크리티컬 워크로드용 기능들이다. 2025년 3분기에는 보안용 토큰 인증 방식이 추가돼 외부 시스템과 연동하기가 더 쉬워졌다. 노드시프트 사례에서는 사내 전용 가상 네트워크를 분리해 운영하는 방식과, 여러 고객사 데이터를 한 인프라 위에서 안전하게 분리 운영하는 방식이 모두 검증됐다.
결제 방식의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신용카드 결제 API가 도입되면서 가상자산을 다뤄본 적 없는 기업도 카드만으로 GPU를 빌릴 수 있게 됐다. USDC 스테이블코인 결제도 그대로 지원되며, 무료 체험 옵션도 함께 제공된다. 8월에는 가격이 미리 정해진 예약형·선점형 인스턴스가 도입될 예정이다. 일반 클라우드와 같은 방식으로 예산을 미리 짤 수 있게 만들겠다는 신호다. 레이저 AIKit이 아카시 콘솔(Akash Console)에 정식 배포 템플릿으로 등록됐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할 변화다. 복잡한 명령어를 다룰 줄 모르는 사용자도 브라우저 화면에서 클릭 몇 번이면 AVA Mini와 동일한 시스템을 띄울 수 있는 환경이 됐다.
확장의 무대도 이미 그려져 있다. 양사가 다음 단계로 예고한 영역은 영상과 음성이다. 레이저 AIKit에 탑재된 추론 엔진(vLLM-omni)은 이미지뿐 아니라 음성 모델도 지원하기 시작했고, AkashML 모델 카탈로그도 음성과 영상 쪽으로 확장 중이다. 펫 사진을 캐릭터로 바꾸던 그 인프라가 짧은 영상이나 음성 합성에도 그대로 쓰일 수 있다. 마케팅 캠페인이라는 한정된 영역을 넘어, 콘텐츠 제작 인프라 전반으로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공급망도 함께 확장된다. 아카시 네트워크는 1분기에 ‘아카시 홈노드’ 베타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고성능 게이밍 그래픽카드를 보유한 개인이 자기 컴퓨터의 유휴 시간을 아카시 네트워크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아카시 네트워크의 GPU 공급은 주로 데이터센터에서 왔다. 홈노드가 본격화되면 전 세계 개인 사용자가 보유한 그래픽카드까지 공급망에 합류한다. 사용자에게 더 가까운 위치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응답 속도가 빨라지고, 공급이 늘면서 가격 경쟁이 강해진다. 레이저 캠페인에서 입증된 한 장에 0.01달러라는 비용 우위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시장 환경도 우호적이다.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급 GPU는 여전히 부족하고 비싸다. AI 회사들이 GPU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미 가동 중인 분산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대안이 된다. 레이저 사례는 그 대안이 글로벌 브랜드 환경에서도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종합하면 이번 협업으로 아카시 네트워크는 ‘저렴한 분산 클라우드 인프라’에서 ‘글로벌 소비자 브랜드의 캠페인까지 운영해본 인프라’로 한 단계 올라섰다. 후속 기업 채택 사례가 따라붙을 경우, 분산형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 대한 시각이 바뀌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