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중동발 전운이 감돌던 국제 유가 시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군사 공격 보류’ 선언에 일단 가파른 폭주를 멈췄다.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질주하던 유가는 휴전 연장 소식에 상승 폭을 일부 반납하며 90달러선에서 턱걸이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이란 지도부 분열 심각… 통일안 가져올 때까지 대기”
21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일 대비 3.85% 상승한 배럴당 90.47달러를 기록했다. 장 중 한때 이란과의 평화회담 결렬 공포에 5% 넘게 폭등하며 91달러를 돌파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성명이 발표된 직후 고점에서 내려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현재 이란 정부는 예상대로 심각하게 분열된 상태”라고 진단하며 “그들이 통일된 제안을 들고나올 때까지 공격을 보류해달라는 중재국 파키스탄의 요청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J.D. 밴스 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이 지연되며 협상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으나, 휴전 종료 시한(D-1)을 앞두고 ‘조건부 연장’ 카드가 나오며 최악의 충돌은 면하게 됐다.
“공격은 멈췄지만 길은 막혔다”… 아시아 공급망 타격 우려
하지만 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는 유가가 상승 폭을 크게 좁히지 못하는 이유로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공급망 리스크를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공격은 미뤘지만,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를 지속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동 분쟁으로 인한 공급 차질 규모는 하루 약 400만배럴에 달하며, 사태 장기화 시 전 세계 공급량의 5% 수준인 500만 배럴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이번 공급망 마비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란의 ‘지정학적 칼날’ 된 호르무즈… 소외된 걸프 우방국
외교가에서는 이번 협상이 이란의 핵 무력이나 미사일 도발을 억제하기보다는, 세계 최대 에너지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타협될 조짐에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최근 “이란은 이미 핵무기를 테스트했다. 그것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며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평했다. 이란 내부에서도 호르무즈를 “칼집에서 이미 뽑힌 칼”이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황금 자산”으로 규정하며 지정학적 억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국가들 사이에서는 ‘안보 소외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에브테삼 알케트비 에미리트정책센터(EPC) 소장은 “지금 형성되는 흐름은 역사적인 화해라기보다 ‘지속 가능한 갈등의 설계’에 가깝다”며 “미사일과 대리 세력에 고통받는 것은 지역 국가들인데,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규칙과 유가 안정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릴 차기 회담에서 이란이 어떤 응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중동의 전운이 걷힐지, 아니면 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재점화할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미국이 동맹국의 안보 우려를 어떻게 달랠지도 이번 사태의 핵심 변수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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