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미국 뉴욕 증시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기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이 주가수익비율(PE)을 닷컴 버블 수준까지 끌어올렸던 6개월 전과 달리, 최근에는 주가가 오름에도 불구하고 밸류에이션은 오히려 낮아지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일회성 요인에 의한 이익 전망치(Earnings)의 급등이 빚어낸 착시 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밸류에이션 하락하며 기록 쓴 증시… 1985년 이후 처음
일반적으로 증시에서 기업의 이익 전망치가 상승하면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함께 커지며 주가를 더 가파르게 끌어올린다. 이 과정에서 PE 배수(Multiple)가 높아지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이다. 반대로 PE 배수가 급격히 하락하는 경우는 보통 경기 침체 우려로 주가가 폭락할 때 나타나는 신호였다.
하지만 최근의 양상은 전례가 없다. 1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마켓워치 등 외신과 시장 데이터에 따르면 1985년 이후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와중에 밸류에이션이 이처럼 큰 폭으로 떨어진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PE 산출 공식의 분모인 ‘이익(E)’이 ‘가격(P)’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S&P 500의 선행 PE는 지난해 10월 23배를 넘어섰으나, 최근 기업들의 이익 전망치가 대폭 상향 조정되면서 한때 20배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주가는 올랐지만 기업이 벌어들일 돈에 대한 기대치가 더 커져, 수치상으로는 주식이 이전보다 ‘싸 보이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AI 반도체와 이란 전쟁, ‘쌍끌이’ 호재가 만든 착시
시장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익 전망치 급등의 배경으로 두 가지 핵심 변수를 꼽는다. 첫째는 AI 수요 폭증에 따른 마이크로칩 가격의 수직 상승이며, 둘째는 이란 전쟁 여파로 인한 에너지 기업들의 반사이익이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0월 시장이 예상한 마이크론의 2027년 주당순이익(EPS)은 19달러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101달러로 5배 이상 치솟았다. 이 기간 주가는 두 배가량 올랐지만, 이익 전망치가 500% 넘게 뛰면서 PE 배수는 오히려 급락했다.
문제는 이러한 이익 증가가 ‘지속 가능’하냐는 점이다. 메모리 업계는 공급 과잉과 부족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현재의 데이터센터 수요가 충족되고 공급 설비가 늘어나면 가격은 다시 하락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섹터 역시 마찬가지다. 이란 전쟁으로 페르시아만 일대의 석유 수출이 제한되자 유가가 폭등했고, 정유사들의 12개월 선행 이익 전망치는 지난 2월 대비 30% 이상 상향됐다. 하지만 최근 휴전 소식이 들리자마자 에너지주들은 다시 하락세를 보이며 전쟁 특수가 일시적임을 시사했다.
“저평가 매력인가, 상투 잡기인가” 엇갈리는 전망
현재 미 증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낙관론자들은 AI 관련주들이 단순한 기대를 넘어 실질적인 수익 창출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씨티그룹의 스콧 크로너트 미국 주식 전략가는 “빅테크 및 AI 관련 8개 대형주의 PEG(주가수익성장비율)는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성장성 대비 주가가 여전히 합리적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월가의 예측 모델이 사실상 ‘추측’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빅테크 기업들이 과거의 가벼운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막대한 자본 투입(CapEx)이 필요한 구조로 변했다는 점,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함에도 시장이 이를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 근거다.
결국 지금의 ‘낮아진 밸류에이션’은 기회가 아닌 경고등일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AI 붐이 꺾이거나 중동 지역에 평화가 찾아와 일회성 이익이 사라지는 순간, 오늘날의 ‘싼 가격’은 내일의 ‘비싼 가격’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