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교착 상태에 있던 디지털자산 기본법 입법 논의가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다시 속도를 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에 부정적 입장을 유지해 온 신 후보자가 총재 지명 이후 공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핵심 쟁점이었던 스테이블코인 규제 방향 논의에도 새로운 국면이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다만 신 후보자가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 재임 시절 스테이블코인의 구조적 한계와 통화 시스템 파편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점을 감안할 때, 향후 정책은 안정성 확보를 전제로 한 신중한 접근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신 후보자는 “미래 통화 생태계 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와 보완적이면서도 경쟁적인 형태로 함께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권 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CBDC의 공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정치권은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간 한은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디지털자산 기본법 논의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해 왔던 만큼, 총재 후보자의 입장 변화가 입법 논의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은 인사 청문회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신 후보자의 전향적 입장을 환영한다”며 “이제 논의는 소모적인 찬반을 넘어 안전한 설계와 제도화에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 후보자가 최근까지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성을 일관되게 경고해 온 만큼, 향후 정책 방향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신 후보자는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 재직 당시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을 통해 달러 표시 디지털자산과 교환되며 자본 유출 경로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존 외환 규제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인식은 그의 연구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지난 2월 발표된 신 후보자의 BIS 워킹페이퍼(제1335호) ‘토크노믹스와 블록체인 파편화’는 공공 무허가형 블록체인의 한계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시스템에 미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신 후보자는 스테이블코인이 올라타는 ‘인프라(레일)’ 자체에 주목한다. 그는 공공 무허가형 블록체인은 구조적으로 여러 체인으로 나뉠 수밖에 없으며, 같은 스테이블코인이라도 서로 다른 체인에 존재하는 순간 사실상 다른 자산처럼 작동한다고 본다. 이는 어디서나 동일한 가치로 통용돼야 하는 화폐의 단일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그는 무허가형 블록체인의 핵심인 검증인 보상을 필연적인 비용으로 봤다.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지급되는 보상이 결국 가스비 형태로 이용자에게 전가되며,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탈중앙화 구조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비용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로 인해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통화·결제 시스템을 보완하기보다 오히려 시장을 분절시킬 수 있다는 것이 신 후보자의 판단이다. 특히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표시 디지털자산과 자유롭게 교환될 경우, 자본 유출이 비규제 영역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지목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신 후보자가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최근 보고서까지 일관되게 제기해 온 만큼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은행 중심으로 제한·관리하려는 기조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신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충분한 지급준비와 엄격한 규율 아래, 은행 등 적절한 라이선스를 가진 금융기관이 책임 있게 발행·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로 밝혔다.
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결국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한정하려는 기조가 유지된다면 시장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경쟁이 인프라와 유통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국내도 보다 다양한 참여 주체와 활용 경로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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