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신지은 앵커, 문정은 기자]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Financial Action Task Force]의 규제 권고안이 암호화폐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FATF는 1989년 파리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금융기관 및 은행시스템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국제기구다. FATF는 지난 6월 암호화폐 거래 관련 규제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암호화폐 취급업소가 거래 발생 시 FATF가 요구하는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공표했다. 회원국에게는 앞으로 1년 간 권고안 도입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FATF의 전 수장은 암호화폐를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금융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주 부산에서 열린 ‘댁스포(DAXPO) 2019’에 참석한 로저 윌킨스(Roger Wilkins) 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의장을 블록미디어가 만났다.

–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이렇게 멋진 나라 한국에 온 것이 처음이다. 초대해줘서 고맙다. 공공 분야에서 오랜 업무 경험을 갖고 있다. 시티은행에서도 일했었다.  FATF에서는 2014년과 2015년 의장을 맡았다. FATF는 자금 세탁 및 테러자금조달 등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기구다. 세계 각 지역에서의 자금세탁방지 조직을 개발하고, 회원국을 확대해 국제조직과 협력을 구축하는 금융 태스크포스(TF)다. TF라고 하기에는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운영됐다. 의장 임기를 마친 지금은 암호화폐 등 여러 금융 분야에서 자문 역할하고 있다.”

– FATF에 대해 여쭤보려고 했는데 대답을 해주셨다. 감사하다.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재밌는 기구다. G20이 주축이다. G20 국가들이 일년에 3~4번 모이지 않는가. 공식적으로 많은 나라의 고위급 인사들이 모인다. 그 자리에서 자금 세탁과 관련된 규정을 세운 것이다. 합의를 통해 규제에 대한 방향을 정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재를 받는다. ‘달러 거래 제한’, ‘금융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 등이 제재다. 규제를 잘 따랐는지 평가도 한다.”

– 구체적으로 어떤 제재가 있나.

“신용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 이란처럼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암호화폐 쪽에서 규제안을 따르지 않는다면 아마도 은행 계좌를 미국에서 열지 못하거나 암호화폐를 법정통화로 바꾸지 못하는 등의 제재가 있을 수 있다.”

– 각 국가들이 모두 따라야 하는 국제법 같은 것인가.

“맞다. 일종의 국제조약 같은 것이다.”

– 펀드, 상품 등 FATF가 규정해 놓은 다양한 자산 거래에 있어서 신원 보증이 미리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미리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의미도 되는데, 범죄가 포착됐을 때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새로운 산업을 규제하는 옳은 방법을 FATF가 규제안에 담았다고 생각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게 옳은 방법이든 아니든,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기술이 더 빠르고 멀리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FATF 의장일 때 주요 이슈였던 ‘모바일 뱅킹’을 예로 들어보자.(모바일뱅킹은 암호화폐와 관련이 없다) 당시 모바일 뱅킹 거래는 전통적인 은행의 거래법과는 달랐다. 전통적인 방법에 적용되던 규칙이 모바일 뱅킹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암호화폐도 비슷하다. 가장 좋은 방법이냐고 묻는다면 ‘확실치 않다’. 이 같은 규제안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암호화폐 거래소 등이 이 기준을 따르게 된다면 그들 스스로가 암호화폐 거래가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다. 신빙성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암호화폐 거래소들은 규제 준수 등에 있어서 ‘최일선’에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 비슷한 맥락에서 암호화폐와 전통 금융의 영역은 어떻게 될까. 의견이 궁금하다. 지금은 암호화폐가 전통 금융의 영역과는 다르게 여겨지지만, 기준이 모호해지거나 합해지지 않을까.

“아마 당신의 의견이 맞을 것 같다. 몇 개 시나리오가 있다. 영란은행 총재가 파운드화가 디지털화 될 수 있을거라고 얘기했다. 거대 은행들이 자체 코인을 만드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시티(은행)코인이나 HSBC 코인 같은 것들 말이다. 페이스북의 리브라도 있다. 리브라의 경우에는 수 억 명의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확장성이 있다. 기존 화폐와 경쟁구도가 될 수 있다. 각국 정부가 걱정하는 시나리오다. 자금 세탁도 문제다. 소비자 보호 문제도 있다. 변동성이 너무 크다. 투명성도 부족하다.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사고 팔면서 뭘 사는지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있다. 공급에 대한 투명성도 없다. 각국 정부는 암호화폐를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정책 등을 펼 수 없다. 정부의 통화정책이 제대로 기능하기 힘들다. 각국 정부가 비트코인이나 리브라를 사서 시장을 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려운 이슈다. 복잡하다. 재밌기도 하다. 두 화폐간의 경쟁을 보고 있지 않나. 암호화폐를 통해 글로벌 단위로의 거래가 쉬워질 수 있다. 비지니스 방법, 세금을 내는 방법, 돈을 지불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다. 많은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예측하기 힘들다.

– 비트코인에 투자해봤는가.

“투자는 하지 않는다. 여러 곳에서 공적인 직책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비트코인으로 월급을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하고 달러로 달라고 한 적이 있다.”

– 한국 정부가 암호화폐 규제나 정책에 있어 뒤쳐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보는가. 

“한국 정부에 대해서 잘은 모른다. 다만 정부가 규제를 위해 ‘달려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서두르다가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 규제가 늦다는 게 꼭 문제가 될 필요는 없다. 면밀하게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호주를 예로 들어보겠다. 비트코인이 상품으로 분류된 적이 있다. 세금의 이중부과를 초래했다. ‘재화 및 서비스’에 대한 세금(GST)를 내야 했고 자본 이득에 대한 세금을 추가로 또 내야 했다. 이후 이중과세 문제를 바로잡고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화폐적 성격’을 인정했다. 다만 반대급부로 KYC 등의 규제를 철저히 준수해야 했다. 한국도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FATF가 권고안을 냈기 때문에 해야 한다. 다만 당장 내일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내년까지 시간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본다.”

 – 리브라나 큰 은행들이 코인을 발행한다.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암호화폐의 본질을 바꿀 것이다. 암호화폐를 처음 고안한 사람들은 ‘자유의지론자’들이었다. 비트코인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은 규제나 정부를 탈피해서 ‘자유’를 얻겠다고 하지 않았나. 상황은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정부가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고 페이스북 리브라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면 암호화폐는 ‘주류’가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페이스북이 있으면 리브라를 다 쓸 수 있지 않는가. 수 억명의 사용자가 있으니 말이다. 이들은 암호화폐 생태계와 역할을 바꿀 것이다. 리브라가 세계 제 1의 은행이 될 수도 있다. 비트코인을 처음 만든 사람들의 비전과는 달리 더 ‘전통적인’ 쪽의 글로벌 화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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