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미국과 이란 간의 휴전 합의가 이뤄진 직후, 이란이 디지털자산(가상자산)을 앞세워 경제 제재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뉴 웨이(New Way)’를 모색하고 있다. 세계 석유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의 대가로 코인 통행료를 요구하며, 78억달러(약 11조 7000억원) 규모로 커진 가상자산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실전 배치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현금은 압류 위험”… 호르무즈 통행료 ‘배럴당 1달러치 코인’
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하미드 호세이니 이란 석유·가스·석유화학제품 수출연합 대변인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해 배럴당 1달러의 관세를 징수할 것이며, 이를 가상자산으로 받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란이 가상자산을 고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제 금융 제재로 인해 달러 결제가 막힌 상황에서, 추적이 어렵고 압류가 불가능한 가상자산을 통해 제재망을 우회하겠다는 전략이다. 휴전 조건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면서도, 그 대가를 가상자산이라는 ‘보이지 않는 화폐’로 챙기겠다는 속셈이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에 따르면, 이란의 가상자산 생태계는 지난해 기준 약 78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케이틀린 마틴 체이널리시스 수석 분석가는 “제재 대상 국가에서 코인은 국경 간 거래를 정산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혁명수비대(IRGC), 비트코인 채굴·테더 확보 주도
이란의 가상자산 활동은 국가 권력의 핵심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주도하고 있다. IRGC는 국가 전력 자원을 투입해 비트코인을 직접 채굴하거나, 대리인을 통해 달러와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테더’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
실제로 이란 중앙은행은 최근 국제 무역 결제와 리알화 가치 방어를 위해 최소 5억700만 달러 규모의 테더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환율(1500원)을 적용할 경우 약 7605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이란 정부가 사실상 국가 차원의 ‘코인 비축분’을 활용해 경제 제재의 숨통을 틔우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베네수엘라가 국영 석유 산업에 테더를 도입해 제재를 우회했던 사례와 흡사하다. 이란 정권에는 가상자산이 무기 구입과 자금 비축을 위한 ‘생존 자금’인 셈이다.
“해운사들에겐 또 다른 장벽”… 코인 시장은 반등
전문가들은 이란의 요구가 실제 실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보내고 있다. 해운사가 짧은 시간 내에 막대한 양의 가상자산을 확보해 전송하는 것은 운영상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선언과 호르무즈 재개방 소식에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7만 2700달러선까지 치솟았다.
엘립틱(Elliptic) 등 분석 업체들은 중동 정세가 불안해질 때마다 이란 최대 거래소인 노비텍스(Nobitex)에서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디지털 뱅크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안을 느낀 이란 국민들이 리알화를 버리고 테더나 비트코인으로 자산을 옮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란의 가상자산 인프라를 겨냥해 관련 거래소를 제재하는 등 압박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정학적 무기를 가상자산과 결합하며 제재 무용론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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