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바키리 스즈, 국산 메밀로
자가제면한 소바도 멋지지만
냉이 튀김에 봄내음이 ‘바사삭’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튀김은 막내가 하는 일이었다. 물론 섬세한 튀김 기술이 필요한 식재료나 고가의 식재료는 셰프나 수셰프가 직접 한다. 하지만 사시사철 이탈리아인들은 튀김을 즐긴다. 봄에는 채소, 여름에는 멸치와 오징어, 가을에는 버섯, 겨울에는 고기를 튀김으로 즐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재료인데, 봄에는 정말 모든 손님이 약속이나 하듯 호박꽃 튀김을 주문했다. 점심 내내 호박꽃 튀김을 만든 적이 있을 정도였다. 호박꽃 리조토도 가끔 나가긴 했지만 거의 열에 아홉은 호박꽃 튀김을 시켰다. 호박꽃 튀김은 계란옷을 입히지 않고 일본식 튀김처럼 묽은 밀가루 반죽옷을 입혀 튀긴다. 안에는 삶은 누에콩과 치즈를 갈아넣은 소를 넣는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어느 정도 튀기는 걸 좋아하면 그냥 먹어도 맛있는 이탈리아 생 소시지(살라미라고 한다)를 튀긴다. 그냥 먹어도 되는 삶아놓은 돼지 족발도 튀긴다(근데 꽤 맛있다). 심지어 여름에는 닭가슴살을 튀겨 식초와 당근 샐러리 같은 향기 채소에 절여서 차갑게 먹는다. 내가 이탈리아 주방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수비토(subito, 빨리빨리란 뜻)와 크로칸테(바삭한이란 뜻)였다.
소바키리 스즈의 덴푸라모리아와세(모듬 튀김). 냉이, 아스파라거스 같은 제철 채소 튀김과 두툼한 한치 튀김, 자연산 새우 튀김으로 구성된다. (사진=권은중 기자)
튀김기술자였던 나를 사로잡은 튀김은?
수많은 이탈리아 튀김 가운데 가장 맛있는 것은 양갈비를 헤이즐넛 옷을 입혀 튀긴 것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맛이다. 맛의 사치였다. 소고기 안심에 푸아그라와 화이트 트러플을 얹은 스테이크인 투르네도 로시니(Tournedos Rossini-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가 즐겨 먹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보다, 나는 이 양갈비 헤이즐넛 튀김이 더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바롤로 와인이 아니라 중국 바이주와 함께 먹어야 할 것 같은 농밀하디 농밀한 맛이었다(서울에 와서 참 많이 해먹었는데 헤이즐넛이 이탈리아 것이 훨씬 기름지다).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생 소시지를 세이지 가루를 입혀서 튀긴 소시지(살라미) 완자 튀김도 별미였다. 한국인은 절대로 생각하지 못할 레시피다. 순대 당면만 빼내서 튀긴 거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건 이탈리아 북부의 타닌이 가득한 레드 와인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이탈리아의 튀김의 지향점은 기름진 것을 더 기름지게 만드는 것 같다.
이렇게 한 때 거의 모든 걸 튀겨본 내가 늘 신기해 하는 튀김이 있는데 그게 일본의 가지튀김이다. 나는 어릴 때 가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물컹한 식감에 특징없는 맛은 뭔가 신이 실수로 만든 작물이 아닐까라는 건방진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러다 40대 몸이 급속도로 망가져 플렉시테리안(가급적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고기를 멀리하면서부터 가지의 맛을 이해하게 됐다. 가지는 나같이 주지육림에서 ‘돌아온 탕아들’이 즐기는 식재료였다. 된장이나 간장을 발라 굽거나 쪄서 먹는 것도 좋았지만 튀김이 정점이었다. 잘 튀겨놓은 가지는 고기와 비슷한 식감이 났다. 가지는 속살이 다공성 구조라서 공기를 머금고 있는 부분이 많다. 가지 튀김은 이 빈 공간을 고온의 기름이 채우면서 고기와 비슷한 질감을 낸다. 또 가지가 함유한 감칠맛 성분인 글루탐산이 고온으로 활성화되면서 맛도 고기맛과 비슷해진다.
일본은 튀김이 발달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 튀김 문화가 16세기부터 도입된 까닭이었다. 고기에 대한 간절한 소증을 잊게 해주는 가지 튀김은 그런 일본 튀김 음식의 전통에서 온 것이다. 일본에서 돈가스같은 독특한 커틀렛 문화 역시 튀김의 전통에서 왔다.
냉이튀김은 왜 맥주보다 사케가 어울리나?
서울 신당동의 소바키리 스즈는 ‘소바’라는 단어가 들어간 상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튀김을 먹으러 간 집이 아니었다. 일본식 메밀국수인 소바를 먹으러 갔다. 2026년 미슐랭 가이드에 올랐을 정도로 수제 소바를 잘 만든다고 이름이 났다. 나는 일본에 가면 매끼니 소바만 먹을 정도인 소바 마니아다.
그래서 한때 메밀가루를 사서 집에서 직접 소바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소바를 직접 만들어 먹었던 것은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시판되는 메밀국수가 메밀 함량이 3% 정도밖에 안됐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검은 색깔을 내기 위해 색소를 넣기도 했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 일본의 8할 건조 소바(니하치 소바라고 한다)를 사다 먹었다. 그러다 후쿠오카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 이후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중국 내몽고 메밀 100%로 만든 국수를 냉장고에 가득 넣어두고 사시사철 먹는다. 국산 메밀로 만든 100% 메밀국수도 있지만 가격이 많이 비싸다. 100% 국산, 외국산 메밀국수가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취향이 10여년 사이에 상전벽해라고 할만큼 발전한 것이다.
소바키리 스즈는 들어가면 거대한 전기 맷돌이 있고 분쇄 전의 메밀 자루가 쌓여 있다. 메밀은 정말 국산이었다. 국산 메밀로 가격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텐데라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면실도 오픈돼 있었다. 신뢰감을 줬다. 소바키리(そば切り)는 일본어로 ‘메밀을 자르다’라는 뜻이다. 스즈(鈴)는 방울이라는 일본어다. “방울처럼 아름답게 메밀국수를 자르겠다”라는 다짐이 읽힌다. 매장의 분위기는 일본 현지 같은 인테리어로 정갈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참선하는 선방같다. 이런 미니멀리즘이 좋았다.
일본에 가면 늘 먹던 식으로 계절 모듬 튀김(덴푸라모리아와세)과 소바를 시켰다. 맥주와 청주(이하 사케)도 시켰다. 사케는 일본식 잔술을 준다. 사케는 잘 몰라서 직원이 추천해주는 걸 시켰다. 젊은 여성분이 설명도 응대도 친절했다.
튀김은 계절마다 종류가 바뀌는데 채소와 새우 그리고 한치로 구성된다. 그런데 가져다준 채소튀김 가운데 냉이 튀김이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반가웠다. 냉이 튀김이라니. 호박꽃 튀김을 본 이탈리아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봄이 튀겨져 나온 것 같았다. 내가 봄의 요정을 만나는 신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감동이었다.
냉이는 아주 잘 튀겨졌다. 바삭바삭했다. 뿌리를 아삭아삭 씹으니 씁쓰레하지만 달콤한 대지의 기운이 느껴졌다. 맥주보다는 역시 사케가 이 쌉싸름한 맛을 잘 잡아주었다. 맥주는 냉이의 솟아오르려는 욕구를 냉정하게 보여주는 부감(俯瞰, 하이앵글)이라면 사케는 냉이를 올려다보는 앙각(仰角)이었다. 냉이의 씁쓸함은 냉이의 상처인 동시에 냉이의 꿈이다. 여름철에 자라는 쌀로 만든 청주는 이 꿈을 북돋우고, 겨울철에 자라는 보리로 만든 맥주는 냉이가 무모했다는 걸 지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젊어서 맥주를 마시고 나이 들어서는 데워진 청주를 마시는 건가?
냉이 튀김은 시작이었다. 이 집 튀김의 하이라이트는 한치였다. 한치 튀김은 이날 처음 먹어봤다. 나는 한치의 밍밍함을 싫어하는 편이다. 제주에는 “오징어가 보리면 한치는 쌀”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치가 맛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버릇이 잘못 들었다. 나는 제주의 무늬오징어와 서해의 갑오징어를 좋아한다. 오징어의 왕이라고 하는 무늬 오징어에 견주면 한치의 맛은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런데 이날 뜻하지 않게 한치의 진면목을 만났다. 일단 이 집 한치는 아주 두툼했다. 갑오징어 ‘가슴살'(사실은 머리) 같았다. 어떻게 이런 두께가 나올까 의아할 정도였다. 두께에서 오는 튀김의 감동은 남달랐다. 고소했다. 응축된 감칠맛과 약간의 단맛이 감동적이었다. 한치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라고 느끼게 했다. 자연산 새우, 아스파라거스, 표고버섯 튀김도 좋았다.

이어서 먹은 자루 소바 역시 메밀 함량이 높은 소바에서 오는 두터움이 있었다. 이 집은 밀가루 1에 메밀 10의 비율로 섞는 ‘9할 소바'(쿠와리소바)다. 9할 소바 가운데에도 ‘소토(外)이치'(메밀 90.9%) 방식이다. 면의 질감이 좋았고 찍어먹는 장인 쯔유의 맛과 향도 탄탄했다. 또 먹고 싶은 농밀하고 오묘한 맛이었다. 이 집의 오리와 청어를 곁들인 소바들의 맛도 저절로 궁금해졌다.
보기 드물게 국산 메밀로 소바를 만든다는 점, 그리고 두툼한 한치와 계절 채소 튀김을 먹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집은 나의 단골 에너지 충전소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소바키리 스즈 주소: 서울 중구 동호로12길 98 1층(청구역 1번 출구에서 200m)
■ 메뉴: 자루소바(1만1000원), 니신토로로소바(2만원), 텐자루소바(1만9000원), 덴푸라모리아와세(자연산 새우, 한치, 계절 채소 모듬, 1만7000원)
*권은중 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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