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장은 커졌는데, 사람은 줄었다
2024년 미국 현물 ETF 승인 이후, 기관 자금이 쏟아졌다. 기업들은 비트코인을 재무자산으로 편입하고, 암호화폐 거래소는 미국 대형주를 토큰화하고 있다. 전통금융과 암호화폐의 벽이 동시에 허물어지고 있다. 시장은 다양해지고 참여자도 많아지면서 분명히 커졌다.
하지만 리테일 시장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국가별로 상이하지만 리테일 이용자들의 거래 규모 및 이용자 수는 감소하고 있다.
과거에는 알트코인의 높은 수익률이 신규 유입을 끌어당기는 힘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전과 같이 알트코인들이 큰 변동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 반증으로 BTC 도미넌스가 약 60%에 도달했다. 이제는 신규 이용자들이 들어오게 할 장치는 없어 기존 유저들만 남아 거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신규 유저들을 유입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내놓고 있다.
거래소들은 신규 유저들을 “크립토 큐리어스(Crypto-Curious)”라고 부른다. 크립토 큐리어스는 암호화폐의 존재를 알고 있고, 관심도 있지만, 아직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아시아 주요국의 인구와 인터넷 보급률을 감안하면 이 잠재층은 수천만 명 단위다. 기존 사용자만으로 성장에 한계가 보이는 지금, 크립토 큐리어스는 업계의 다음 성장을 결정하는 변수다.
하지만 이들을 막는 장벽으로 변동성이 가장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변동성은 원인이 아니라 표면이다. 주식시장도 변동성이 크지만, 사람들은 주식을 산다. 정부가 관리하고, 내 돈이 보호되고, 사회가 정상적인 투자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시장은 이러한 것들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크립토 큐리어스가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다섯 가지가 있다.
- 규제 불확실성: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 보안 리스크: 거래소가 해킹당하거나, 사라지거나, 내 자산이 동결될 수 있다는 불안이 있다.
- 세금 부담: 수익에 세금이 얼마나 붙는지, 언제 바뀔지 예측할 수 없다.
- 접근성: 암호화폐 거래 외 스테이킹, DEX 거래 등등 복잡한 요소들이 많다.
- 사회적 인식: 주변에서 암호화폐 거래를 “도박”이라고 본다.
앞으로 살펴볼 아시아 9개 지역의 크립토 큐리어스가 멈춰 서 있는 지점은 모두 다르다.
2. 아시아 주요국 크립토 큐리어스 분석: 나라마다 다른 진입장벽
2.1. 동북아시아: 한국, 일본, 홍콩

동북아시아는 아시아 크립토 시장에서 규제가 가장 빠르게 정비되고 있는 지역이다. 세 시장 모두 전용 법률 또는 라이선스 체계를 갖추고 있거나 도입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규제의 방향과 시장의 성격은 전부 다르다. 한국은 투기적 트레이딩 문화가 강하고, 일본은 XRP 중심의 독특한 거래 구조를 보이며, 홍콩은 기관 중심의 글로벌 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2.1.1. 한국: 거래량은 세계 2위, 이용자는 줄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암호화폐가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법정화폐를 가진 나라다.
2025년 하반기 원화 거래량은 $6,630억으로 글로벌 USD 거래량에 육박하며 세계 2위였다. 게다가 거래가능 이용자 1,113만 명, 이는 전체 인구의 약 21.53%으로 국가 인구수 대비 높은 비율로 암호화폐 거래를 한다
이와같이 한국 이용자들은 암호화폐 거래 의지는 강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현재는 이용자는 전기 대비 11% 늘었지만 일평균 거래규모, 원화예치금은 감소하고 있다. 이는 더 나은 수익률을 주는 주식시장이 더 나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고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용자들의 해외 거래소로 이동하는 문제도 있다. 이전과 달리 이용자들이 국내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지 않은 종목과 레버리지 상품을 거래하기 위해 해외 거래소로 나가고 있다. 게다가 암호화폐 과세도 내년에 시행될 예정이다. 아직 폐지 가능성도 있지만, 예정대로 도입된다면 암호화폐 거래 수요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한국 암호화폐 시장의 세계 2위에 달하는 거래량과 적극적인 투자 의지는 다른 아시아 시장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환경이다. 때문에 암호화폐 과세 형평성 해소와, 거래소의 다양한 전략이 갖춰진다면 이미 갖춰진 인프라 위에서 크립토 큐리어스의 전환이 가장 빠르게 일어날 수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2.1.2. 일본: 가장 안전하고 가장 비싼 시장

일본은 아시아에서 암호화폐 입문자가 들어오기 안전한 시장이면서 세금으로 인해 리턴이 비싼 시장이다.
2014년 마운트곡스 해킹으로 약 85만 BTC를 잃은 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거래소 라이선스를 만들었다. 그 교훈이 지금의 구조를 만들었다. 거래소는 고객 자산의 95% 이상을 콜드월렛에 보관해야 하고, 고객 법정화폐는 전액 신탁 계좌에 분리 보관해야 한다. FSA 등록 거래소 32곳, 누적 계좌 1,200만 개, 고객 예치금 5조 엔이다. 이는 “들어가도 안전하다”는 신호가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시장이다.
그런데 들어가면 세금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암호화폐 수익은 잡소득으로 분류되어 최대 55% 세율이 적용된다. 1억 벌면 5,500만 원이 세금이다. 같은 수익을 주식으로 냈으면 약 20%, 2,000만 원이다. 2.7배 차이. 아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시장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세금을 물리고 있다.
이 모순이 일본 크립토 큐리어스의 핵심 장벽이다. 안전하다는 확신은 충분하다. 하지만 안전한 만큼 비싸다. 들어갈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지만, 남는 게 없을 수 있다.
시장 구조도 독특하다.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JPY로 거래소에서 매수된 금액 중 XRP가 약 $217억으로 BTC($47억)의 4.6배였다. 단일 알트코인이 비트코인을 압도하는 시장은 글로벌에서 일본뿐이다.
이는 SBI홀딩스와 리플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만든 현상이다. 일본에서 XRP는 “투기 자산”이 아니라 “실사용 가치가 있는 암호자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저축을 선호하고 투기를 경계하는 사회에서 크립토가 자리를 잡은 방식이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중의 사회적 수용은 아직 느리다. 투자 경험이 있는 개인 투자자 중 암호자산을 보유한 비율은 7.3%에 불과하다.
반면 기업은 적극적으로 암호화폐를 수용하고 있다. DAT기업인 메타플래닛은(Metaplanet)은 “아시아의 Strategy”로 불리며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축적하고 있으며, SBI홀딩스는 비트코인+XRP 듀얼 자산 크립토 ETF를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에는 결정적 변수가 하나 있다. 2026년 4월 시행 예정인 두 가지 개혁이다. 하나는 암호자산을 금융상품거래법(FIEA) 적용 대상으로 재분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세율을 금융소득 일률 20%로 바꾸는 것. 주식과 같은 세율, 같은 분류.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시행되면 일본 크립토 큐리어스의 가장 큰 장벽이 사라진다.
이러한 변화가 예고되어 있기에 현재 크립토 큐리어스가 최대 55%의 세율을 감수하며 지금 들어올 이유가 없다.
2.1.3. 홍콩: 장벽 셋을 해결했지만, 접근성이 막고 있다

홍콩은 아시아에서 크립토 큐리어스의 주요 장벽을 가장 많이 해결한 시장이다. 규제가 명확하고, 보안 기준이 높고, 세금 부담이 없다. 세 가지가 동시에 최고 수준인 곳은 아시아에서 홍콩뿐이다.
SFC가 2023년부터 VATP 라이선스 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2025년 2월에는 ASPIRe 로드맵을 통해 향후 규제 방향까지 공개했다. 같은 해 8월 스테이블코인 제도권을 도입을 발표했고 첫 라이선스는 2026년 초 발급을 계획하고 있다.
거래소는 고객 자산의 98% 이상을 콜드월렛에 보관해야 하며, 의무보험과 연례 사이버보안 감사가 요구된다. 암호화폐 과세도 없다. 2024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까지 승인했다.
홍콩은 규제, 보안, 세금 세 가지를 거의 해결한 상태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가 문제다. 접근성이다.
2026년 2월 기준 SFC 라이선스를 받은 플랫폼은 12곳이지만, 이 플랫폼들의 서비스 대상은 주로 자산 800만 HKD(약 13억 원) 이상의 전문 투자자다. 한국처럼 앱을 깔고 바로 매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규제의 품질은 아시아 최상위인데, 그 규제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좁다.
사회적 인식도 독특한 위치에 있다. 글로벌 금융 허브라는 도시의 정체성 덕분에 크립토를 “도박”이라고 보는 시선은 한국이나 일본보다 약하다. 하지만 동시에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사회적 낙인은 없지만, 사회적 친근함도 없다. 크립토 큐리어스가 “나도 해볼까”라고 느끼기에는 심리적 거리가 있는 시장이다.
변화의 경로는 열려 있다. SFC는 라이선스 플랫폼이 해외 오더북을 활용할 수 있는 공유 유동성 프레임워크를 도입했고, 스테이킹 서비스도 조건부로 허용했다. 딜러 및 커스터디 라이선스 체계가 2026년 입법예고를 계획하고 있다.
홍콩의 상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크립토 큐리어스의 장벽 다섯 가지 중 세 가지를 해결했지만, 나머지 한 가지인 접근성이 앞의 세 가지를 무력화하고 있다. 아무리 안전하고, 세금이 없어도, 들어갈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홍콩의 과제는 이미 쌓아 놓은 신뢰를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게 문을 넓히는 것이다.
2.2. 동남아시아: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동남아시아는 암호화폐 채택 경로가 가장 다양한 지역이다. 같은 동남아 안에서도 시장의 성격과 규제의 방향이 전부 다르다.
2.2.1. 싱가포르: 조건은 다 맞췄는데 65%가 안 들어온다

싱가포르는 이 리포트에서 다루는 8개국 중 오각형이 가장 균형 잡힌 시장이다. 규제, 보안, 세금, 접근성, 사회적 인식. 다섯 가지 장벽 중 어느 하나도 뚜렷하게 약하지 않다.
MAS가 아시아에서 가장 일관된 라이선스 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2025년 6월에는 해외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자에게도 라이선스를 의무화했다. 거래소는 고객 자산을 신탁으로 분리 보관해야 하고, FATF 상호평가까지 완료했으며 암호화폐 과세도 없다.
게다가 실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그랩(Grab)과 스테이블코인 XSGD의 결제 연동, MAS의 토큰화 정부채 시범사업, 3대 은행의 CBDC 은행 간 대출 테스트. 규제 안에서 크립토가 일상 금융으로 확장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크립토 큐리어스가 안 들어올 이유가 없다. 그런데 숫자가 말하는 현실은 다르다. 크립토 인지도는 94%로 역대 최고인데, 실제 보유율은 29%다. 나머지 65%가 싱가포르의 크립토 큐리어스다.
이 65%는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알고 있고, 접근할 수 있고, 사회적 낙인도 없는데 안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꼽은 가장 큰 장벽은 시장 변동성(68%)이었고, 거래소 선택 기준 1위는 “신뢰와 보안”(65%)이었다. 수수료보다 높다.
싱가포르는 크립토 큐리어스에게 흥미로운 반례다. 제도적 장벽을 거의 다 해결해도 65%가 시장에 들어오고 있지 않다. 크립토 큐리어스의 전환이 장벽 제거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은 다른 아시아 시장이 참고해야 할 지점이다.
2.2.2. 태국: 정부가 직접 문을 열고 있는 시장

태국은 아시아에서 정부가 가장 직접적으로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시장이다.
2025년 1월, 인가 거래소를 통한 암호화폐 매매 차익에 대해 5년간 개인소득세를 면제했다. 같은 달 뮤추얼 펀드와 사모 펀드의 크립토 투자를 허용했다. 이후 세금을 깎아 주고, 기관 자금 경로를 열고, 정부 자체가 디지털 자산을 발행했다.
태국의 크립토 사용자는 약 1,300만 명, 인구의 약 18%다. 2018년 디지털자산사업 긴급칙령으로 아시아에서 일찍 법적 프레임워크를 만들었고, SEC가 9곳의 거래소에 라이선스를 발급하고 있다. THB 기반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94억으로 APAC에서 KRW 다음 규모다. 단순히 허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 육성 단계에 진입한 시장이다.
규제 집행도 양면으로 작동하고 있다. 2025년 4월 해외 플랫폼에 대한 역외 규제를 시행해 바이빗(Bybit), OKX 등 5곳을 차단하고, 동시에 7월에는 증권회사의 투자 토큰 서비스를 허용하고 크립토 파생상품 도입 공청회를 시작했다. 불법은 막고 합법 경로는 넓히는 구조다.
사회적 인식 면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크다. 전 총리 탁신 친나왓이 크립토 규제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강조했고, 푸켓 크립토 결제 시범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부가 세금까지 면제하는데 해도 되는 거 아닌가”라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증권회사 채널 개방으로 기존 주식 투자자가 익숙한 경로로 크립토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도 전환을 돕고 있다.
다만 한 가지가 빠져 있다. 결제다. 2022년부터 크립토를 결제 수단으로 쓰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TouristDigiPay 샌드박스를 통해 외국 관광객의 크립토-바트 환전을 시범 운영하고 있고, BOT는 바트 기반 스테이블코인 샌드박스도 별도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태국인이 일상에서 크립토로 결제하는 경험은 아직 없다.
태국의 특징은 정부가 크립토 큐리어스의 장벽을 위에서부터 걷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세금 면제, G-Token 발행, 기관 자금 개방, 파생상품 도입까지. 이만큼 적극적인 정부 신호는 아시아에서 드물다. 남은 과제는 “사고파는 자산”에서 “쓸 수 있는 자산”으로의 전환이다. 결제 금지가 풀리는 시점이 태국 크립토 큐리어스의 다음 전환점이 될 수 있다.
2.2.3. 인도네시아: 상품에서 금융자산으로

인도네시아는 2025년 1월, 암호화폐에 대한 관점을 제도권으로 들이기 위해 바꿨다.
감독기관을 상품선물거래감독청(Bappebti)에서 금융감독원(OJK)으로 이관하면서 크립토를 “상품”이 아닌 “디지털금융자산”으로 재분류한 것이다. 단순한 관할 변경이 아니다. OJK는 은행, 보험, 증권, 연기금을 포괄하는 기관이다. 크립토가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레벨의 금융 상품으로 격상되었다는 의미다.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상장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거래소(Bourse)가 크립토 자산 목록을 결정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보안 전문인력 의무 고용, 대출의 자본 원천 사용 금지, 소비자 보호와 개인정보 보호 의무도 강화되었다. 규제가 강해진 것이지만, 동시에 “정부가 인정한 금융 상품”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다만 전환기의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다. 전환 기간은 2027년 1월까지 설정되어 있고, 그 사이에 규정 해석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결제 수단으로서의 사용도 금지되어 있다. 루피아를 유일한 법정통화로 규정한 통화법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은 높은 인구다. 2025년 2.8억 인구 중 크립토 계좌 보유 비율은 아직 한 자릿수였다. 나머지가 이 시장의 잠재적 크립토 큐리어스다. OJK 이관은 이들에게 “금융상품으로 인정받았다”는 가장 강력한 제도적 신호다. 이 신호가 실제 전환으로 이어지려면 전환기가 안정적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2.8억 시장의 다음 장은 OJK 체제의 안착 여부에 달려 있다.
2.2.4. 베트남: 사람이 먼저 들어오고, 제도가 뒤따르는 시장

베트남은 다른 나라와 순서가 반대다. 보통은 규제가 먼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들어온다. 베트남은 사람들이 먼저 암호화폐 시장에 들어왔고, 규제가 뒤따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크립토가 이미 일상 금융에 가깝다. 송금, 게임, 저축 등 다양한 경로로 생활에 침투해 있다.
그렇기에 정부는 6월 국회가 디지털기술산업법을 통과시켜 디지털자산을 민법상 재산으로 공식 인정하여 소유, 이전, 상속, 법적 보호가 가능하게 했다. 게다가 추가적으로 2025년 9월에는 5년간(2025~2030) 크립토 자산 시장의 시범 운영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오랜 공백에서 단번에 포괄적 프레임워크로 전환 시도 중이다.
다만 제도는 아직 첫걸음이다. 투자자 보호 장치는 샌드박스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거래소 보안 기준이나 자산 분리 의무는 세부 규정이 구체화되는 과정에 있다. FATF 회색목록 탈출도 과제다. 회색 목록에 있는 동안에는 해외 파트너십에 제약이 따른다.
접근성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26년 초 기준, 재무부 주도로 5개 내외 거래소에 대한 시범 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다. 테크콤뱅크(TCEX), VP뱅크, LP뱅크 등 은행 계열과 VIX증권(VIXEX) 같은 증권사 계열이 주도하고 있다. 최소 자본금 기준이 4억 달러로 설정되어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허가를 받는 사업자의 재무 안정성은 담보된다.
그동안 바이낸스 등 해외 플랫폼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현지 면허 거래소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제도권 밖에서 이미 대규모 채택이 이루어진 시장에 제도권 진입 경로가 처음으로 열리고 있다.
베트남의 오각형은 사회적 수용이 압도적으로 높고 나머지가 낮은 극단적 불균형이다. 하지만 이 불균형의 방향이 중요하다. 수용도가 낮아서 규제를 만들어야 하는 시장이 아니라, 수용도가 이미 높으니 규제가 따라잡아야 하는 시장이다. 샌드박스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세부 규정이 갖춰지면, 이미 형성된 기반 위에서 가장 빠른 제도화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2.2.5. 필리핀: 투자가 아니라 생활이 만든 크립토 시장

필리핀은 이 리포트에서 다루는 8개국 중 “크립토 큐리어스”라는 개념이 가장 다르게 적용되는 곳이다. 다른 시장에서 크립토 큐리어스는 관심은 있지만 안 들어오는 사람이다. 필리핀에서는 이미 모르는 사이에 크립토를 쓰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
채택을 이끈 것은 투자가 아니라 생활이다. 팬데믹 시기 P2E(Play-to-earn) 게임이 젊은 층의 크립토 첫 접점이 되었고,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송금 수요가 스테이블코인 기반 송금 경로의 성장을 만들었다. 크립토가 투자 자산이 아니라 생활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는 시장이다.
사회적 수용은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그 위의 제도적 보호다. BSP가 2022년 9월부터 신규 VASP 라이선스 발급을 동결하고 있다. 2025년 9월에 추가로 연장되었지만 VASP는 9곳뿐이다. SEC는 2025년 7월 CASP 프레임워크를 시행해 최소 자본금, 자산 분리, 마케팅 규제까지 도입했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보안 리스크는 이 시장의 가장 뚜렷한 약점이다. SEC가 미등록 플랫폼에 대해 앱스토어 삭제 조치까지 취하고 있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한 피싱 사기가 반복되고 있다. 실사용이 신뢰를 대신하고 있는 구조에서, 제도적 보호가 뒤따라오지 않으면 그 신뢰는 사고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긍정적 변화도 진행 중이다. 필리핀은 FATF 회색목록에서 벗어났다. UnionBank와 GoTyme Bank는 모라토리엄 예외로 라이선스를 취득해 은행 앱에서 크립토 매매를 제공하고 있다. 하원에서는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 법안까지 발의되었다. 대통령 마르코스 주니어가 디지털 혁신을 공개 지지하면서 정치적 정당성도 확보되어 가고 있다.
필리핀의 오각형은 베트남과 비슷하게 사회적 수용이 높고 규제와 보안이 낮은 불균형이다. 하지만 성격이 다르다. 베트남은 규제가 없던 곳에 제도를 새로 만드는 중이고, 필리핀은 이미 있는 제도의 문을 잠가 놓은 상태다. VASP 모라토리엄이 풀리고 CASP 프레임워크가 안착하면, 이미 형성된 실사용 기반 위에 제도적 신뢰가 올라가는 구조가 될 수 있다.
2.2.6. 말레이시아: 규제는 있는데 선택지가 없다

말레이시아는 규제 프레임워크가 있는데도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는 드문 사례다.
증권위원회(SC)가 2019년부터 디지털자산거래소(DAX) 라이선스를 발급하고 있고, KYC/AML, 자산 분리, 정기 감사 등 기본적인 보호 장치도 갖추고 있다. 암호화폐 과세도 없다. 제도의 틀만 보면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SC에 등록된 DAX는 6곳뿐이고, 거래 가능한 토큰 수는 아시아에서 가장 제한적이다. DeFi나 파생상품은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았다. 2024년 DAX 총 거래가치는 RM 139억(약 $31억)으로 전년 대비 2.6배 늘었지만,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와 비교하면 절대 규모가 작다.
선택지가 제한되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간다. SC에 따르면 2019년 이후 미등록 DAX 관련 민원이 996건 접수되었다. 더 다양한 토큰과 상품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미등록 해외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규제가 보호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시장의 선택지를 좁혀서 비규제 영역으로의 이탈을 만들고 있다.
SC도 이 문제를 인식하여 2025년 6월 DAX 프레임워크 개편안을 발표했다. 신규 토큰 상장 절차를 단축하는 자유화된 상장 프레임워크 도입과 자본적정성 요건 및 자산 분리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총리실이 디지털자산 및 AI 자문위원회 설립을 승인하면서 규제만이 아니라 산업 전략 차원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크립토 큐리어스에게 이 시장은 “할 수는 있지만,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 곳이다. 규제가 시장을 보호하고 있지만, 동시에 성장의 천장이 되고 있다. DAX 프레임워크 개편이 이 천장을 높일 수 있을지가 말레이시아의 다음 질문이다.
위 글은 블록미디어의 파트너사 글로벌 웹3 전문 리서치 기관 타이거리서치의 ‘아시아 9개국 리테일 투자자 환경 분석’의 전문입니다. 해당 보고서는 <타이거리서치> 공식 사이트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