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푼밥상, 제주 돼지로 맛을 낸
순대, 몸국, 접짝뼈국으로
공동체 밥상의 원형질 보여줘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지난 3월 중순 주말, 행사가 생겨 갑자기 제주에 오게 됐다. 제주 로컬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는 급하게 이번 제주 여행의 음식 테마를 순대로 잡았다. 대학 때부터 제주를 다녔지만 제주에 와서 순대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제주를 다닌 지 30여 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주에 오면 나는 늘 해산물을 탐닉했다. 20대 때는 전복과 오분자기 같은 패류를, 30대 사회생활에 열심이어서 지갑이 넉넉할 때에는 다금바리, 감성돔같이 서울에선 먹기 어려운 고급 생선회를, 마흔부터는 쥐치, 삼치, 자리돔같이 제주 사람이 즐기는 물고기를 즐겼다. 그런데 제주 사람을 만나다보니 제주도 잔치 음식은 회가 아니라 돼지였고 그중의 한 축이 수애(순대)라는 것을 알았다. 쉰에서야 제주 돼지에 주목하게된 것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순대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고려시대 몽골군이 제주도에 주둔하면서부터 제주도에 순대 문화가 정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의 돼지 순대의 역사는 함경도와 쌍벽을 이룬다. 함경도 역시 만주 유목 민족 문화의 영향으로 순대가 일찌감치 발달했다.
나는 1~2년전부터 대창 순대와 순대 내포를 즐기면서 순대의 깊은 맛에 눈을 떴다. 그런 나에게 제주도는 순대의 원형을 보전하고 있는 ‘순대 성지’의 하나였다. 거기다 제주도 말로 순대를 일겉는 말은 ‘수애’. 발음도 어찌나 고운지. 제주 순대의 맛이 떠나기 전부터 기대가 됐다.
나의 수애 순례 첫 출발지, 낭푼밥상
제주도에 오기 전에 지역의 유명한 순대 전문 식당을 폭풍 검색해 봤다. 많은 식당 가운데 내가 첫 번째 가야 할 곳으로 결정한 식당이 제주시 노형동의 낭푼밥상이었다(‘냥푼’이 아니다).
낭푼밥상은 제주도 향토음식 일번지같은 곳이다. 제주 향토음식명인 1호인 김지순 선생님과 그의 아들인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이 운영해왔다. ‘낭푼’은 제주의 정서가 담긴 제주말이다. ‘낭’은 나무다. 제주도에는 자기와 유기 그릇을 만드는 곳이 드물어 예전에는 단단한 나무로 큰 그릇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낭푼이다. 제주도의 전통적 밥상은 큰 나무 그릇인 낭푼에 밥을 담고 찬을 내서 각자가 밥을 떠서 먹었다고 한다. 수저와 국만 있으면 누구나 밥을 먹을 수 있는 서민들의 공동체 밥상이었다.
낭푼밥상이라는 상호는 이런 제주 두레 밥상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양 원장은 1990년대 말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던 중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국의 전통 음식에 가진 열정에 영감을 얻어 귀국 후인 2000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을 설립했다. 이후 제주 음식문화를 연구하고 알리는 일에 앞장서 오다 2016년 제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제주의 음식 문화를 맛보게 할 수 있는 식당을 열었다(아쉽게도 양 원장은 지난해 별세했다. 향년 60세. 지금 식당은 김지순 선생님과 며느리가 운영한다).
낭푼밥상의 시그니처(가장 유명한 메뉴)는 가문잔치 정식이다. 가문잔치란 집안의 큰 행사를 뜻하는 말로 주로 결혼식을 말한다. 가문잔치 음식으로 순대, 건두부, 오징어초무침, 수육, 몸국 등이 나온다. 몸국이란 해초인 모자반을 돼지 육수에 끓여서 나오는 구수하고 걸죽한 국이다. 국물의 걸죽함은 메밀가루로 맞춘다.

제주 수애 맛이 뭍 순대와 다른 까닭
나는 낭푼밥상을 4일간의 일정에서 두 번을 들렀다. 처음은 순대와 수육을 먹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잔치음식인 가문잔치 정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내가 살면서 제주 수애(순대)를 먹은 게 이날 낭푼밥상이 처음이었다. 초간장을 내줘 초간장에 찍어 먹었는데 구수하고 담백했다. 초간장이 닝닝해서 소금을 찍어 먹었다. 소금이 좀더 내 입맛에는 맞았다. 그런데 낭푼밥상의 수애는 서울 사람 입맛에는 약간 퍽퍽했다. 메밀가루와 보릿가루를 선지와 함께 넣었기 때문이었다. 수애는 피순대의 원형이라고 하는데 좀 색달랐다. 함께 내준 수육 역시 약간 퍽퍽했다. 뭍의 부들부들한 수육과도 달랐다.
수애가 다소 퍽퍽했던 이유는 이 음식이 잔치용인 탓이다. 제주 결혼식은 보통 사흘에서 닷새 가량 이어졌다고 한다. 채소와 두부를 속으로 많이 넣어서 수애를 만들면 잔치를 치르는 동안 상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속을 최소화하고 메밀이나 보리가루를 섞었다는 것이다. 순대를 찍어먹을 때 초간장을 내주는 것도 혹시 모를 배탈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새우젓과 쌈장에 익숙한 육지사람 입맛에 제주 순대는 심심했다.
두 번째로 낭푼밥상을 갔을 때는 제주도 현지에 사는 지인들과 함께 갔다. 4인 기준 6만3000원인 제주도 잔칫상을 재현한 한상차림(4인분)을 먹었다. 한상차림에는 수애, 수육, 마른두부는 물론이고 몸국, 접짝뼈국, 고사리육개장 같은 국과 들기름 메밀비빔국수가 나왔다. 가격에 견줘 푸짐한 한상이었다.
접짝뼈국 역시 이날 처음 먹어봤는데 독특했다. 접짝뼈는 돼지 앞다리 부분의 갈비(제주 말로 쪽갈비를 말하는 듯 하다)로 끓인 돼지갈비탕이다. 아주 부드럽고 맑고 고소했다. 혼례날 신부에게 주던 귀한 국이었다고 한다. 접짝뼈국은 다른 국과 달리 메밀을 넣지않아 걸죽하지 않다.
반면 고사리 육개장은 한상차림에 나온 세 가지 국 가운데 가장 진했다. 고사리가 어찌나 푸짐한지. 고사리 덕에 깊은 제주 중산간의 삼나무 숲이 느껴졌다. 육개장이지만 육지와 달리 고춧가루를 전혀 넣지 않는다. 습기가 많은 제주에서는 건고추를 키우기기 어렵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전통적으로 음식을 된장과 간장으로 양념한다.
몸국은 돼지 육수에 해초인 모자반을 넣어서 끓인 국이다. 제주 잔치 음식에서 가장 많이 먹는 국이다. 나는 해초도 좋아하고 돼지육수도 좋아해서 몸국은 이미 여러 차례 먹어봤다. 그런데 이 집 몸국은 내가 먹어본 몸국 가운데 가장 부드럽고 깔끔했다. 낭푼밥상은 제주 바다의 참모자반을 쓴다고 하는데 그 차이인 것 같았다. 톡톡 씹히는 식감도 좋았다. 몸국, 접짝뼈국, 고사리 육개장 모두 돼지 내장과 돼지뼈로 끓인 국물 덕에 부드러웠다. 오래 끓인 듯 국물은 구수하고 진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런 맛을 ‘배지근하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국물이 진하고 묵직하면서도 구수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배지근한 제주의 맛에 눈뜨다
왜 이렇게 담백하게 만들까? 근대화 이전까지 제주는 뱃길이 너무 멀어서 물산이 늘 부족했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가난했다. 그래서 혼례나 장례같은 행사가 있을 때 집에서 키우던 돼지로 국을 끓여서 손님을 접대했다. 하지만 마을사람과 멀리서 오는 수많은 손님을 집에서 키우던 한 두마리의 돼지 고기만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돼지뼈와 내장으로 국물을 내고 부족한 고기를 모자반같은 해초나 고사리같은 마른 나물로 갈음했던 것이다. 제주 잔치음식은 단순히 맛을 내기 위한 요리 레시피가 아니라 집안 행사에 와준 사람들에게 소박하지만 넉넉하게 음식을 내주기 위한 지혜를 기초에 두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낭푼밥상에 오기 전날 저녁에 먹었던 꿩메밀국수의 맛도 이해가 됐다. 제주에 사는 친구 소개로 간 맛집이었는데 맛이 내가 먹어본 가운데 최강으로 담백했다. 평양냉면은 식초라도 치지만 이 꿩메밀국수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담백했다. 심지어 국수에는 무채가 들어있었다. 음식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나는 그 담백함이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낭푼밥상의 가문정식을 먹어보고 꿩메밀국수의 담백함이 수궁이 갔다. 제주 중산간 지역 사람들이 추운 겨울 꿩을 잡아서-실제 꿩을 잡아보면 닭처럼 살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그 꿩고기로 좀더 많은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게 메밀국수와 무채를 넣고 끓였다. 겨울을 이겨내려던 중산간사람들의 별식이었고 그래서 담백했다.
제주만의 특유한 생선국인 멜국(멸치국)과 장대국(생선인 양태를 넣고 무채와 함께 끓인 국) 역시 놀랄 만큼 담백하다. 멜국과 장대국은 심지어 국간장도 들어가지 않는다. 소금 간만 한다. 그래도 참 깊은 맛이 있다. 나는 이 국들에서 바다를 본다. 바다를 끼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맑은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푸른 제주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와 집 근처 밭(우영)에서 나온 싱싱한 배추를 넣어서 끓였기 때문에 다른 것이 필요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제주 잔치 음식인 순대를 먹고 생각이 좀 달라졌다. 멜국 같은 제주 생존식의 전통이 잔치 음식에도 그대로 투영돼 왔던 것이다.
낭푼밥상을 운영하는 김지순 명인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주음식의 특징을 “제주 환경을 바탕으로 한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와 최소한의 양념으로 원재료의 맛을 살린 건강함”이라고 꼽았다. 제주 음식의 건강함이 제주 마을의 공동체 정신과 합쳐져 배지근한 제주 순대와 몸국을 만든 것이다. 제주 순대는 이제 나에게는 혀가 아니라 가슴으로 먹어야 하는 특별한 음식이 됐다.
■낭푼밥상 주소: 제주 제주시 수덕5길 23
■메뉴: 가문잔치정식(1만7000원), 몸국(1만1000원), 접짝뼈국(1만2000원), 고사리육개장(1만1000원), 메밀기름간장비빔국수(1만1000원), 수육(1만1000원), 순대(6000원)
*권은중 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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