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반, 속 꽉찬 뽀얀 대창순대
호쾌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해
함께 내주는 콩비지도 정겨워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돼지는 우리 민족에게 각별한 동물이다. 재산과 복, 그리고 다산을 상징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국가적 제천 행사는 물론이고 민간의 잔치 때 돼지를 잡았다.
돼지 내장요리인 순대는 그런 잔치 음식의 하나였다. 그만큼 귀했다. 조선시대에 궁중에서도 자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민간에서는 집안이나 동네 어른들의 수연(壽宴)에 꼭 있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함경도의 도야지순대(아바이순대)와 전라도의 대창 순대가 대표적인 수연 음식이었다.
대창 순대는 돼지 큰 창자에 채소, 곡물, 선지를 넣어 만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순대보다 훨씬 크다. 순대의 헤비급이라고 하겠다. 대창 순대는 어른들의 장수와 집안의 풍요를 기원하는 음식이어서 크면 클수록 귀하게 여겼다.
난 진짜 순대를 늦게 배웠다. 분식집 순대인 당면 순대만 마흔 넘도록 먹었던 탓이다. 그랬던 나에게 대창 순대의 풍요로운 맛을 알려준 식당이 있다. 그게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호반이다. 호반을 다니기 전까지 나는 순대의 정점에 서 있는 대창 순대를 접해본 적이 없었다. 손이 많이 가는 대창 순대를 서울에서 하는 곳이 드물었던 탓도 있다. 호반의 대창순대는 나의 첫 번째 대창순대였다.
노포 전문 블로거들의 말을 종합하면, 원래 이 집은 1960년대 초반 서울 무교동에서 창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안국역(재동)으로 옮겼다가 다시 이전해 2016년 낙원동에서 문을 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평안도식 순대를 중심으로 소고기 수육, 전, 병어찜 등을 주 메뉴로 영업해왔다.
평안도식 대창 순대는 선지와 함께 두부, 채소를 많이 넣어서 함경도 순대보다 뽀얗고 부드럽다. 평안도 순대는 소장에 선지와 함께 양배추, 배추, 호박, 양파, 부추 등 채소를 많이 넣는 뽀얀 용인 백암 순대의 대창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실제 호반의 대창순대는 다른 집의 대창 순대보다 색깔이 흰 편이다.

호반의 순대 요리는 모듬 순대와 순댓국 2가지다. 모듬 순대를 시키면 대창 순대와 간, 허파, 위(오소리감투) 같은 내포를 내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장으로 만드는 순대는 없다. 그렇지만 대창을 어찌나 잘 손질했는지 순대에서는 돼지 향이 거의 없다. 대창 안에 두부와 채소가 많아서 향이 은은하고 맛이 부드럽다. 일반적인 소장으로 만드는 순대같은 아기자기한 맛이 아니라 호쾌한 맛이 특징이다. 순대 한 쪽만 먹어도 만주를 달리는 호연지기 같은 게 느껴진다. ‘아 이래서 순대가 잔치 음식으로 쓰였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고개가 끄덕여진다. 공장에서 나온 당면 순대만 먹으려 했던 나의 짧은 입을 반성하게 된다.
호반은 대창 순대만 맛이 있는 게 아니다. 함께 내준 간이나 위 같은 돼지 내장들도 아주 부드럽다. 내가 돼지 간을 퍽퍽해서 잘 못 먹는데 호반의 간은 부드럽다. 색깔은 다른 곳의 간보다 붉은 빛인데 피냄새는 적었다. 이 형용 모순이 이해가 잘 안된다. 간을 어떻게 부드럽고 냄새를 나지 않게 삶는 것인지 궁금했다. 주방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두 여사님들이 조리를 하는데, 두분의 내공에서 나오는 묘미인 것 같다.
모듬 순대 한 접시를 시키면 두툼한 오소리감투도 대엿점이 나온다. 오소리 감투는 돼지 위를 칭하는 말이다. 돼지 위가 워낙 맛이 있어서 삶아서 내놓으면 마치 오소리가 먹이를 번개같이 채서 사라지 듯이 금세 없어진다고 해서 ‘오소리’가 붙었다. ‘감투’는 서로 먹으려고 하는 게 감투를 놓고 경쟁하는 것 같다는 뜻이다. ‘오소리’도 ‘감투’도 모두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의미다. 언어 대중들의 조어 능력이 정겹다. 호반은 순댓국도 먹어야 한다. 모듬 순대에 내놓은 것보다 작은 크기의 순대가 들어있는데 찐순대보다 더 쫄깃하다.
가게를 찾은 손님 대부분은 모듬순대를 먹고 병어찜이나 우설 소고기 수육을 추가로 시킨다. 겨울철에는 서산 강굴을 시키는 사람도 제법 있다. 병어찜은 호남식보다는 다소 부드럽다. 지금이 3월 중순이니까 서산강굴은 아마 시즌이 끝났을 것이다.

나는 이 집에서 대창순대 말고도 눈을 비빌 만큼 놀란 음식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반찬으로 내주는 김치였다. 약한 젓갈향과 굴향이 난다. 담백하고 매콤했다. 처음 먹었을 때 충청도식도 아니고 전라도식도 아닌 김치를 먹으면서 이 집 요리의 근원이 궁금해서 검색을 하게 됐다. 그만큼 김치가 나에게는 임팩트가 컸다. 매콤한 젓갈향은 대창순대와도 너무 잘 어울렸다. 주방 여사님들이 건강해서 이 김치를 오래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늘 김치가 고팠는데 호반은 나의 그 소증을 어루만져 준다.
또 물김치도 별미다. 이 집의 시그니처를 물김치로 꼽는 사람도 있다. 상마다 냉면 그릇 같은 접시에 물김치를 푸짐하게 내준다. 무심하게 배추를 툭툭 절인 것 같은데 담백하면서도 쨍한 것이 역시 범상치가 않다. 또 순대를 먹다 보면 뜨근한 비지를 상마다 한 접시씩 내준다. 공짜다. 비지가 담백하니 맛이 있다. 곁들여 나오는 간장을 치면 담백함에 구수함이 추가된다. 이 맛난 비지를 인심 좋게 내놓는게 어찌나 정겹던지. 호반에 앉아 있으면 그냥 1980년대 종로3가의 노포나 전주 남부시장 노포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집은 그래서 오후 4~5시에 가도 술을 마시는 노인과 젊은이 그리고 나같은 중년의 손님으로 꽉 차 있다. 다들 어떻게 알고 이렇게 찾아오는지. 6시 되기 전에 이미 만석이다. 흥겹다. 호반은 우리 전통 음식이 가진 축제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반가운 집이다.
■호반 주소: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26길 20(종로3가역 5번 출구에서 190m)
■메뉴: 모듬 순대(2만9000원), 순대국(1만원), 병어찜 중(5만원), 우설(3만7000원), 편육(3만7000원)
*권은중 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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