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심영재 특파원] 행사 이튿날, 센트로 바나멕스 전시장 공기는 전날보다 한층 구체적이었다. 거시경제와 공급망, AI를 둘러싼 큰 그림이 오갔다면, 이날은 각 부스에서 보다 현실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그래서 돈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블록미디어는 글로벌 최대 디지털자산 거래 플랫폼 바이낸스(Binance)를 비롯한 여러 기업 부스를 돌며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 크립토 시장의 현재를 들었다.
“해외 송금이 크립토 키웠다”… 멕시코, 은행 대안 수요 급증
“해외 송금이 크립토를 키웠다”는 말은 추상적인 슬로건이 아니었다. 바이낸스의 릴리아 부츠코바(Lilia Vuchkova)는 멕시코 시장을 설명하며 가장 먼저 ‘은행 대안 수요’를 꺼냈다. “멕시코는 해외 이주가 많고 자금 이동이 활발하다”며 “디지털자산(가상자산)은 전통 은행 시스템 외에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부츠코바는 중남미 시장은 여전히 크립토 산업의 성장 초기 단계로 평가했다. 그는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는 아직 발전 여지가 크다”며 특히 젊은 인구 구조와 디지털 친화적 환경이 장기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제정된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을 근거로 올해 1월1일(현지시각)부터 미국에서 해외로 보내는 송금에 1%의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세청(IRS)에 따르면, 이 세금은 현금, 우편환, 은행수표, 기타 실물 형태로 이뤄진 송금에 적용된다. 특히 멕시코로의 송금이 주요 대상이다. 수천만 명의 이민 가정이 경제적으로 이 송금에 의존하고 있다. 2024년까지 미국, 멕시코 송금규모는 매년 640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멕시코로 유입된 송금액은 617억91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6% 감소했다. 유엔 경제사회국(UNDESA)은 같은 해 2분기 멕시코로의 송금액이 전년 대비 11% 줄었다고 밝혔다. 송금 감소세와 새 세금 도입이 겹치며 이민자와 가족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비용과 속도다. 웨스턴유니온, 머니그램, 와이즈 등 비은행 송금업체를 이용할 경우 건당 수수료가 10%에 육박하고, 자금 도착까지 최대 48시간이 걸린다. 은행 계좌가 없는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더 좁다.
이 지점에서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 송금이 대안으로 부상한다. 즉시 결제와 저비용, 24시간 접근성이 강점이다. 멕시코는 인도에 이은 세계 2위 송금 수령국이다. 규제가 정비될 경우 디지털 송금 실험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멕시코 거래소 비트소(Bitso)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멕시코 내 코인 구매의 36%가 스테이블코인이었다. 시티그룹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달러 접근성이 낮은 신흥국에서 스테이블코인의 효용이 특히 크다”고 분석했다.
“크립토는 4년 주기 사이클 시장”… 수익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
하지만 시장은 낙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호주 기반 글로벌 트레이딩 회사 악시(Axi)의 에스테반 페르난데스(Esteban Fernandez)는 “크립토는 4년 주기 사이클 시장”이라고 말했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상향해왔다는 진단이다.
현재 코인 시장이 조정국면인데 가격은 언제쯤 오를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언제 오를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며 “투자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트레이더 브로커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악시는 2007년 호주에서 설립된 글로벌 트레이더 회사다. 키프로스, 두바이, 뉴질랜드 등에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남미 시장은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스에서 라이선스를 통해 사업장을 운영 중이다.
회사는 최근 자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크립토 현물 거래를 출시했다. 페르난데스는 이에 대해 “비트코인을 예치하고 가격 상승 시 수익을 얻는 구조도 가능해질 것”이라며 “투자자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 디지털자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지 사용자 확대와 함께 크립토 접근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멕시코 기반 트레이딩 회사 위트레이드(WeTrade)의 아돌포 세르반테스(Adolfo Cervantes) CEO 역시 비슷한 맥락을 짚었다. 세르반테스는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 디지털자산 시장은 성장 흐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는 시장 전망과 함께 투자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지점이 ‘수익률’이 아니라 ‘자금 안전’이라고 전했다.
자금의 출처는 투명한지, 법적 문제는 없는지, 필요할 때 출금이 가능한지, 플랫폼이 갑자기 문을 닫지는 않는지. 달러 중심의 단일 통화 환경에서 벗어나 다양한 디지털자산 선택지가 열리고 있지만, 그만큼 신뢰 기반의 거래 환경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은 기관이 설계한다”… 차트 너머의 ‘데이터’를 읽어야
이날 포럼에서는 투자 데이터에 대한 접근법과 앞으로 다가올 양자컴퓨터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 지에 대한 강연 등도 진행됐다.
강연자로 나선 운납 비야누에바(Hunab Villanueva) 콴티엄 트레이딩(Quantium Trading) 파생상품거래 전문가는 “시장은 기관이 만든다”며, 개인투자자들이 캔들 차트와 보조 지표에 매몰될 때, 수십억 달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들은 이미 파생상품과 수학적 모델로 승률 100%의 게임을 설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야누에바는 기관 투자의 핵심을 ‘파생시장’과 ‘리스크 관리’로 요약했다. 거대 자금이 합법적으로 움직이는 진짜 무대는 옵션과 선물 등 파생상품 시장이라는 것이다. 기관은 감에 의존하지 않으며, 통계 모델과 정량적 헤지 전략을 통해 ‘지지 않는 구조’를 만든 뒤에야 시장에 진입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전통적 트레이더들이 맹신하는 지지·저항선과 패턴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시장을 움직이는 실체는 기술적 지표가 아니라 델타 노출, 헤지 압력, 다크풀 유동성 같은 기관의 변수라는 지적이다. 데이터로 기관의 의사결정 흔적을 추적하고 측정해야 한다고 비야누에바는 주장했다.
결국 투자의 성패는 “가격을 보는가, 아니면 가격을 움직이는 기관의 구조를 읽는가”에 달려 있다며, 시장은 더 이상 감으로 이기는 곳이 아닌, 측정으로 정복하는 데이터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터의 습격… “2030년, 현대 암호 무너질 수도”
하이메 벨라스케스(Jaime Velazquez) F5 네트웍스 엔지니어는 ‘양자컴퓨터는 축복인가, 재앙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연대에 올라섰다. 암 치료와 우주 탐사를 앞당길 이 ‘꿈의 기술’이, 역설적으로 우리 자산을 지켜온 현대 암호 체계를 단숨에 부술 ‘슈퍼 열쇠’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양자 위협에 맞설 ‘양자내성암호(PQC, Post-Quantum Cryptography)’로의 전환을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꼽았다. 이는 단순히 비밀번호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다. 과거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Y2K’보다 더 복잡하고 거대한 보안 대수술이다. 준비에 실패한 금융사는 데이터 유출은 물론, 고객 신뢰 붕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벨라스케스에 따르면 미국(15.5%)과 캐나다(12.4%) 등 서구권은 발 빠르게 새 자물쇠를 채우고 있지만,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 2%대에 머물며 취약점을 드러냈다. 그는 “오는 2030년이면 기존 암호는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라며, “보안 민첩성이 곧 금융 산업의 생사를 가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머니 엑스포 멕시코 2026은 평일 행사임에도 많은 관람객이 몰리며 현지의 핀테크·디지털자산 열기를 확인시켰다. 다만 첫날 등록 지연으로 긴 대기줄이 형성되는 등 운영상의 아쉬움도 남겼다. 한 멕시코시티 시민은 “올해만 벌써 네 번째 행사인데도 미숙함이 보였다”며 “내년에는 달라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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