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 법리, "중대 사안은 의회 거쳐라"
트럼프, "비애국적인 판결" …대법관들 비난
다른 법률 동원, 줄소송 · 의회와 충돌 불가피
[블록미디어 이정화 기자]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인 광범위한 글로벌 관세 부과에 대해 6 대 3 위법 판결을 내렸다.
보수성향 대법관 6명 중 3명이 진보성향 3명과 뜻을 같이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법적 파장이 ‘역대급’이라는 분석이다. 대법원이 트럼프에 제동을 건 핵심 법리는 이른바 ‘중대 사안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이다. 한마디로 “의회를 거치라”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법률에 근거해 관세를 즉시 부활시켰지만, 향후 기업들과 민주당 주지사들의 관세 환급 줄소송, 의회와의 격렬한 충돌이 불가피하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내에서 일부 이탈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소송전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행정부 수반으로서 트럼프가 가진 법적 권능이 막강한 만큼 ‘관세 완전 무효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트럼프가 ‘제대로 망가질테야’로 나올 경우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법원 판결 이후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블룸버그 등이 분석한 ‘중대 사안 원칙’ 법리를 요약했다.
‘중대 사안 원칙’과 명시적 권한의 부재
대법원이 트럼프 관세를 위법으로 판단한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행정부의 자의적인 법률 해석과 의회의 승인이 없었다는 점이다. 다수의견문을 작성한 존 로버츠(John Roberts)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관세 부과의 유일한 법적 근거로 삼은 1977년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에 ‘관세(tariffs)’나 ‘세금(duties)’이라는 단어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국가 경제와 정치에 막대한 파급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의회의 명확하고 구체적인 권한 위임이 선행되어야만 행정부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법적 원리인 ‘중대 사안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을 이번 판결에 적용했다.
정부가 IEEPA를 통해 국가 부채를 4조달러 감축하고 15조달러 규모의 국제 협정을 체결하려 한 것은 전례 없이 광범위한 권한 주장이며, 이는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도를 넘은(extravagant)’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의회가 이처럼 특별하고 독자적인 관세 부과 권한을 행정부에 넘겨주려 했다면, 다른 관세법에서 항상 그래왔듯이 법률에 그 의도를 명시적으로 밝혔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여기에 더해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대법관은 ‘중대 사안 원칙’이라는 거창한 논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일반적인 법 조문 해석만으로도 IEEPA가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닐 고서치(Neil Gorsuch) 대법관은 역사적으로 세금과 관세를 매기는 권한은 행정부가 아니라 선출된 대표들인 의회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트럼프의 일방적 조치를 비판했다.
트럼프, 패소 소식에 격노
대법원의 판결 소식은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주지사들과의 비공개 회의가 진행되던 중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조용히 다가가 메모를 건넸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럼 우리가 진 건가?(So it’s a loss, then?)”라고 물었다.
대법원의 위헌 판결 사실을 최종 확인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 판결을 ‘수치(disgrace)’라며 격분했다는 것이 미국 언론들의 공통된 보도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네드 라몬트(Ned Lamont) 코네티컷 주지사는 “대통령의 머리가 폭발하는 줄 알았다”며 험악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정된 질문과 답변 시간을 서둘러 마치고 회의장을 급히 떠나 대응책 마련에 돌입했다.
“바보이자 애완견”… 대법관들을 향한 전례 없는 인신공격
판결이 나온 지 약 3시간 후, 백악관 브리핑룸의 조명을 어둡게 낮추고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45분간의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에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자신이 직접 임명했음에도 위법 판결에 표를 던진 닐 고서치(Neil Gorsuch) 대법관과 에이미 코니 배럿(Amy Coney Barrett) 대법관을 향한 배신감과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는 이들을 가리켜 정치적 반대파들의 “바보이자 애완견(fools and lap dogs)”이라고 부르며, “헌법에 불충성하고 매우 비애국적”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그들 두 사람은 가족의 수치”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어서 다수 의견에 동참한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케탄지 브라운 잭슨(Ketanji Brown Jackson) 등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을 향해서도 “우리 국가의 수치”라고 깎아내렸다.
반면, 행정부의 손을 들어준 3명의 보수 대법관들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 사무엘 알리토(Samuel Alito), 클라렌스 토마스(Clarence Thomas) 대법관에 대해서는 그들의 “힘과 지혜, 조국에 대한 사랑”에 감사를 표했으며, 특히 자신을 지지해 캐버노 대법관을 가리켜 천재(genius)라고 치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 있을 새해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에 자신에게 반대한 6명의 대법관을 초청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솔직히 말해 그들이 오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끝까지 불쾌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사법부의 강력한 제동과 격렬한 분노 표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는 대법원이 문제 삼은 법안 대신 1974년 무역법 122조(Section 122)라는 새로운 법적 권한을 동원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10%의 글로벌 관세를 대체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며 자신의 무역 전쟁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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