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맥소주, 안동서 손수 키운
유기농 통밀로 소주 내려
40도 깔끔, 53도 피니시 좋아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2020년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셧다운됐다. 세계인이 사실상 집안에 감금됐다. 이 때 나는 두 가지에 도전했다. 하나는 사워도우 빵이었고 하나는 전통주였다. 당시 내 관심 키워드는 ‘발효’였다.
발효는 예술이고 과학이다. 원재료가 미생물과 결합해서 시간을 함수로, 새로운 맛을 창조한다. 원물을 초월하는 놀라운 새로움이 탄생한다. 그 새로움은 인간의 상상력의 원천이 됐다. 와인에 디오니소스와 예수같은 신들의 이름이 붙은 까닭이었다. 와인이나 가양주를 담그는 행위는 그 자체로 고귀했다. 와인은 미사에, 가양주는 제사에 쓰였다.
그렇지만 발효는 반자본주의적이다. 발효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시간인 탓이다. 자본주의에서 시간은 곧 비용이다. 그러나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10달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발효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이 지켜지지 않으면 맛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 식품공학은 미생물 발효 대신 화학 첨가물과 복잡한 공정을 이용해 발효의 효과를 낸다. 대신 이런 과정을 거치면 맛이 떨어지거나 없다. 여기에 인공향과 인공색소를 집어넣는다. 그게 우리가 먹는 대량 생산된 공장 음식이다. 맛도 없지만 상상력이 싹틀 수가 없다.
대표적인 게 가공치즈다. 자연치즈는 우유를 자연발효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가공치즈는 우유를 끓여서 화합물을 만들고 여기에 인공향이나 효소를 통해 단시간에 향을 만들어 낸다. 1차 세계대전 때 이 기술은 완전하게 대중화됐다. 전쟁 중에 식량을 배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술도 빵도 비슷하다.
왜 발효는 상상력을 불러올까?
공장 술과 빵과 치즈를 50년간 먹어왔던 내가 자연 발효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이탈리아에서였다. 가장 놀란 것은 치즈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탈리아 가기 전까지 가공치즈와 자연 발효치즈를 구분못하는 ‘치즈맹’이었다. 자연치즈를 많이 먹지 못한데다 자연치즈의 대명사인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도 녹색 깡통에 든 가공치즈인 파마산 치즈로 알고 있던 나였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가공치즈가 거의 없다. 심지어 미국산 깡통치즈인 ‘파마산’ 치즈를 이탈리아 현지에서 파는 것은 불법이다. 원산지 보호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탈리아에서는 조상 방식대로의 술과 빵(치즈와 햄도)을 현대에도 먹어야 하는 것을 강박적으로 강조한다. 핵심은 미생물이다. 이탈리아 빵과 술과 음식의 장인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자생 미생물을 그대로 보존해서 이를 토대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협회, 지방정부 그리고 국가가 인증한다. 이른바 DOP(와인은 DOC로 불린다)제도다.
나는 이탈리아 있을 때, 공장에서 화학첨가물을 투입해 대량 생산된 빵이나 술을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내가 이탈리아 음식을 배우는 학생이어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원리 원칙적인 음식을 내놓아서 그럴 수도 있다. 또 이탈리아의 수퍼에 가면 우리나라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빵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방식의 빵과 햄과 치즈와 술을 비싼 돈을 주고 사먹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들 음식의 자부심은 이런 전통에서 오는 것이다. 이들의 독특한 상상력과 미에 대한 센스도 나는 음식 전통에 기대고 있다고 믿는다.
반면 우리나라 현실은 이런 트렌드와 동떨어져 있다. 외국 수입 치즈와 와인은 비싼 돈을 주고 사서 먹지만 우리 전통 술과 간장에는 큰 관심이 없다. 공장 된장과 주정에 물을 탄 소주를 먹는다. 우리 음식 문화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공장 김치, 공장 간장, 공장 빵, 공장 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다. 심지어 이를 외국인에게 ‘K-푸드’라고 내놓는다. 전통을 중시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인 같은 유럽인들이 한국식 공장 생산 전통 음식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하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한국에 돌아가면 배우고 싶었던 것이 우리나라 전통 술이었다. 정말 자연 그대로 만든 우리 술이 경쟁력이 없는지가 스스로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내가 직접 해보니 경쟁력이 있었다. 나는 일단 전통주의 발효제 역할을 하는 누룩부터 만들었다. 누룩이 발효의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먼저 쌀과 귀리로 누룩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부터 누룩으로 쌀 막걸리와 청주를 빚었다. 매일 매일 향이 진해지는 100% 누룩 발효 술은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내가 하는 게 별로 없는데도 누룩에 모인 미생물은 나에게 맛의 신세계를 선물했다. 가끔은 내가 쌀로 빚은 막걸리로 소주를 내리기도 했다. 막걸리(단양주)로 내린 소주는 35도 정도였다. 막걸리로 내린 소주에서는 꽃향기가 났다.
자연 발효된 술로도 어느 정도 승부가 가능했지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나같은 후발 주자가 상업적으로 뛰어들 여지는 크지 않았다. 그리고 술은 고된 노동과 많은 정성을 요구했다. “미쳐야 미친다”는데 나는 너무 계산적이었다. 술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맛의 기쁨을 창조하는 프로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인공감미료 전통주를 경계하는 까닭
이런 경험 탓에, 나는 다른 사람이 만든 전통주를 볼 때, 천연 발효냐 인공감미료를 쓰느냐를 우선적으로 본다. 상당수의 전통주 브랜드가 인공 발효와 인공감미료를 쓰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다. 안 그러면 단가를 맞추기 어렵다. 전통주는 막걸리나 청주가 1만~5만원을 한다. 소주는 조금 더 비싸다. 한때 전통주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나도 3만원이 넘으면 전통주에 지갑을 선뜻 열지 못한다. 일반인들은 가격 저항선이 이보다 더 낮을 것이다. 1000~2000원짜리 막걸리나 소주도 나름의 맛이 있는 탓이다. 값싼 인공향에 빠지면 거기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천연 발효와 인공감미료를 쓰지 않은 전통 소주 가운데 내 눈에 확 들어온 술이 안동의 진맥소주였다. 내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생산하는 소주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안동에도 인공첨가물과 효소제를 넣은 소주들도 많다. 나는 고향 술이라고 그런 술을 마시지 않는다.
진맥소주는 다른 소주와 다른 3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유기농 통밀로 누룩만 넣고 만든 발효주를 증류해서 만든 밀소주다. 대개 소주는 쌀, 보리, 밀같은 곡물이나 과일로 만든 발효주를 증류한다. 재미있는 점은 쌀, 보리, 밀처럼 원료가 다르면 소주 맛도 다르다는 점이다. 쌀은 복합적이고, 보리는 차분하고, 밀은 발랄하다. 곡물의 성격이 소주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진맥은 내가 만들었던 꽃향기 그윽한 쌀소주와 달리 고소하고 경쾌하다. 높은 도수는 약간의 매운 맛도 있다. 쌀 소주가 느긋한 고급 세단이라면 밀소주는 부릉부릉 스포츠카다.
두 번째는 진맥소주는 전통 레시피를 현대화했다는 점에 가치가 있다. 경북지역의 ‘수운잡방’ ‘음식디미빙’같은 고 조리서에서는 밀로 빚은 발효주로 소주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을 고증해서 안동의 맹개술도가가 만든 소주가 진맥소주다.

진맥, 소주에 떼루아까지 입혀
마지막으로 진맥소주는 와인의 떼루아처럼 소주에 떼루아를 입히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는다. 거기서 수확한 유기농 통밀로 소주를 빚는다. 이미 스토리가 탄탄한데 또 하나의 근사한 스토리를 입힌 것이다. 떼루아(Terroir)란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토양, 기후, 양조법 등을 통칭하는 말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도 이렇게 자기나 키운 포도로만 만드는 에스테이트 와인(Estate Bottled Wine 혹은 레콜탕 와인 Récoltant vin)은 훨씬 강한 개성을 가진 와인으로 여긴다. 진맥소주는 맛과 전통과 그리고 스토리를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동의 맹개마을에서 키운 밀과 누룩 100%로 손수 만든 술은 우리가 잊고 지내온 대지의 위대함을 떠올리게 한다. 공장 술이나 인공 효소와 첨가제를 넣은 술에서는 깃들기 힘든 스토리다.
독특한 스토리 덕에 진맥소주는 국내에 꽤 팬들이 있다. 또 국제적으로 명성을 쌓고 있다. 진맥소주는 2021년 세계 3대 주류품평회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SFWSC, San Francisco World Spirits Competition)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특히 진맥소주 53도는 주류 평가인 40명이 골드점수를 부여할 때문 수상을 받는 ‘더블골드(Double Gold)’를 받기도 했다.
이런 진맥소주가 팝업 행사를 지난 1월 서울 북촌에서 한다고 찾아 가봤다. 고가의 진맥소주를 골고루 마셔볼 속셈도 있었고 거창 한국수의 독특한 국수와 두수고방 오경순 셰프의 음식을 맛보고 싶기도 했다. 두수고방은 사찰에서 식재료를 모아두고 나누는 공간을 의미한다. 참가 비용이 2만원이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친구들도 2명이나 데리고 갔다.
행사에 마련된 술은 진맥소주 22도, 40도, 53도였다. 개인적으로는 40도가 가장 깔끔하고 목넘김이 좋았다. 쌀소주보다 경쾌했다. 병오년 말의 해에 어울리는 맛이었다. 53도는 약간 매운 맛에 바닐라 향도 느껴졌다. 53도인데도 피니시가 은은했다. 22도의 구수한 맛도 좋았지만 40도와 53도를 먹고 나서는 22도로 돌아가긴 어려웠다. 이 소주들은 함께 서빙된 거창 한국수의 개성있는 국수들과 오경순 셰프의 정갈한 음식과의 궁합도 좋았다.

진맥40도, 고추장 육회와 페어링 탁월
이날 3가지 국수가 나왔는데 두번째 나온 고추장에 비빈 육회를 올린 국수가 기억에 남는다. 매콤한 제피가루를 살짝 곁들인 고추장 육회 국수는 40도의 소주와 아주 어울렸다. 40도와 53도가 가진 약간의 매운 맛의 힌트가 고추장 육회와 일치형 페어링을 보여줬다. 고추장의 뭉근한 강렬함 덕에 집에서 만든 숙성 고추장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처음에 나온 우거지 된장 국수와 마지막의 매생이 국수도 좋았지만 진맥 소주의 발랄함과 높은 도수와의 페어링에는 살짝 아쉬움이 있었다. 구운 고기나 튀김을 소주의 안주로 즐겨온 나의 아재 입맛 탓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보늬밤 율란이 디저트로 나왔다. 삶은 밤을 체에 으깬 정성도 정성이지만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이 율란은 53도 소주와 잘 어울렸다. 율란이란 삶은 밤을 으깨서 계피와 꿀로 밤모양으로 빚은 음식이다. 특히 율란은 진맥소주를 오크에 숙성한 ‘시인의 바위’와도 페어링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전통 소주를 오크통에 넣어 숙성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디저트와 함께 먹으니 오크 숙성의 바닐라나 넛맥(육두구)같은 복합적인 향과 디저트의 달콤함이 잘 어울렸다.
첨언이지만, 진맥소주 말고도 나는 국내 소주 가운데 삼해소주도 좋아한다. 삼해소주는 내가 소주를 배울 때 쓰던 작은 구리 증류기 알람빅으로 소주를 내린다. 내가 그 20리터짜리 작은 알람빅으로 내린 소주를 아마추어의 한계라고 스스로 규정지을 때 삼해소주는 같은 도구로 복합적인 향의 삼양주 소주를 내려서 판매하고 있었다. “명장은 도구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라더니 그 익숙한 경구가 나에게 적용될 줄 몰랐다. 삼해소주는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보다 변명을 찾으려고 했던 나에게 매서운 죽비같은 술이다.
그래서 나는 진맥소주와 삼해소주를 마실 때마다 이 술을 빚는 장인들의 잘 벼려진 의지와 우리 땅의 곡물과 미생물의 잠재력을 느낀다. 나에게 이 소주들은 혀나 코가 아니라 머리로 마셔야 하는 술이다.
*권은중 음식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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