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2045년 선진국 진입 목표, 디지털자산 육성 플랜
인구 평균 연령 29세 청년 국가, 디지털자산에 높은 관심
금융감독청(OJK) 중심으로 제도 설계, 디지털 산업 부흥 추진 중
[자카르타=James Jung 기자]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세계 1위 메가 시티다. 시민 4200만명이 역동적인 삶을 가꾸고 있는 자카르타는 일본 도쿄를 제치고 2025년 기준 아시아 및 세계 1위 도시에 등극했다.
인도네시아는 디지털자산 부문에서도 아시아의 떠오르는 시장 중 하나다.
지난 1월14일 자카르타에서 만난 로렌스 사만사(Lawrence Samantha) 노비(NOBI) CEO는 “인도네시아 인구 2억8000만명이 모두 디지털자산(가상자산) 고객이 되는 날을 위해 뛰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거인’ 골든 인도네시아
노비는 인도네시아에서 랭킹 5위에 드는 디지털자산 거래소다. 사만사 CEO의 주도로 바이비트와 파트너 협약을 맺기도 했다. 사만사는 “인도네시아 주요 대기업과 대형 금융사들이 어떤 형태로든 거래소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는 현재 인가를 받은 거래소가 29개에 달한다. 디지털자산 특구 역할을 하는 발리에 근거지를 둔 경우가 많다. 디지털자산 이용자는 2000만명이 넘는다. 이용자수로는 우리나라의 2배다. 지난해 디지털자산 관련 법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면서 거래소 숫자가 늘어나고, 시장 규모도 커졌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45년 선진국 진입이라는 국가 전략 비전을 선포했다. ‘골든 인도네시아’ 플랜에는 디지털자산 시장 고도화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평균 연령 29세의 젊은 거인이다. 디지털자산 시장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인구구조다. 인도네시아는 디지털자산을 ‘상품(Commodity)’에서 ‘금융자산(Financial Asset)’으로 격상시키는 대전환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인도네이사는 시장 감독 권한의 대이동을 단행했다. 그동안 무역부 산하 상품선물거래감독청(Bappebti)이 관할하던 디지털자산 규제 권한을 2025년부터 금융감독청(Otoritas Jasa Keuangan·OJK)으로 이관했다.
OJK가 주도하는 디지털자산의 금융자산화
OJK는 우리나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을 합친 것과 같은 최상위 금융 규제 기구다. 은행, 증권, 자산운용 등 금융사 전반에 대한 인허가권을 쥐고 있다. Bappebti와 OJK 간의 업무 인수인계가 끝나고 관련 법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디지털자산은 주식이나 채권과 유사한 ‘디지털 금융자산(Digital Financial Assets)’으로 자리 잡았다.
OJK는 금융업계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다. 모든 인허가권, 감사, 검사, 제재권을 가지고 있다. OJK 소속 공무원들은 엘리트 의식도 강하다. OJK가 디지털자산을 관리 감독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 의지가 강력하다는 뜻이다.
OJK 청사에서 만난 하산 파우지(Hasan Fawzi) OJK 위원은 디지털자산 총책임자다. 공식 직함은 금융부문 ‘기술혁신, 디지털자산, 크립토 자산 감독 특임 위원(Executive Head of Technologica Innovation, Digital Assets, and Crypto Assets Supervision)’이다.
파우지 위원은 함께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과 2시간 넘게 양국의 디지털자산 규제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나라 규제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파우지 위원은 일관된 규칙을 강조했다.
“디지털자산은 그야말로 금융자산입니다. 결제 수단으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OJK의 이같은 원칙은 인도네시아 거래소 CEO들과 인터뷰에서도 반복적으로 거론됐다. 인도네시아의 법정화폐인 루피아 스테이블코인은 모두 3종류가 시범 단계에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민병덕 의원은 “OJK 규제 틀은 우리나라가 추진 중인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도 달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국 통화 중심으로 무역 결제를 하려는 입장은 분명했다”고 말했다.

OJK는 스테이블코인 외에도 디지털자산 시장 전반에 대한 제도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시장의 인프라를 금융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OJK는 ‘POJK 27/2024’ 규정을 통해 디지털 금융자산 거래업자의 라이선스 요건도 구체화했다. 이 제도하에서 지난해 신규 거래소들이 한꺼번에 인허가를 받았다.
파우치 위원은 “원칙적으로 해외 기업들도 일정 요건을 구비하면 인도네시아에서 디지털자산 거래소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원 대국의 실물자산 토큰(RWA)
규제 정비와 맞물려 인도네시아 디지털자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거래소 이용자수는 이미 주식 투자자 수를 넘어섰다.
최근 주목 받는 분야는 실물 자산 토큰(RWA)이다. 인도네시아 RWA 시장은 2030년까지 88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네시아는 자원부국이다. 니켈, 석탄, 팜유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토큰화하여 거래 효율성을 높이려는 계획이 수립 돼 있다.
다만, RWA 플랜은 실효성에서는 의문이 있다. 현지 거래소 CEO들도 정부 계획이 RWA 실적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자원의 생산, 가공, 유통 등의 일관화(downstream)를 추구한다. 단순히 원자재를 수출하지 않고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RWA와 같은 실험적 금융이 쉽게 적용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디지털자산과 RWA에 대한 수요는 어떨까? 인도네시아 암호화폐 거래소 협회 로비(Robby) 회장은 “인도네시아 청년 세대는 기성 세대와 다른 의식이 있다. 부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부모 세대와 달리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강현 인도네시아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은 “인도네시아는 인구 수로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다. 이슬람은 종교와 생활이 융합돼 있어,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서는 경제적 자립 욕구도 크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디지털자산이 주목 받는 것도 청년 세대의 투자 수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철저한 역할 분담
사만사 CEO는 “인도네시아 디지털자산 거래소들이 난립한 것처럼 보이지만, 투자 수요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OJK도 이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OJK 디지털자산 담당 공무원들은 “한국에서 청년 투자자들에 대한 디지털자산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디지털자산에 몰려가는 현상을 한편으로는 우려하면서도, 산업 육성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디지털자산 규제 체계의 핵심은 ‘기능별 분업’이다. 디지털자산이 ‘투자 자산’으로 쓰이면 OJK가, ‘지급결제 수단’으로 쓰이면 중앙은행(Bank Indonesia)이 감독한다.
‘결제’ 영역에서 중앙은행의 입장은 단호했다. 중앙은행은 “지급결제는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라는 원칙 하에 ‘가루다 프로젝트(Project Garuda)’를 추진 중이다. 이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인 ‘디지털 루피아(e-Rupiah)’를 발행하여 국가 주도의 디지털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가루다 프로젝트는 민간 루피아 스테이블코인과 충동하는 부분이 있다. 인도네시아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파우지 위원은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쓰임에 따라 자신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인도네시아 거래소 관계자들은 루피아 스테이블코인을 대외 무역 결제에 쓸 수 있다는데 동의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인도네시아에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루피아 스테이블코인을 교차 상장하자는 것. 이는 OJK와 중앙은행의 정책적 결단을 전제로 한다.
아지까지 두 기관의 태도는 결제용 코인에 대해 엄격하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백서를 통해 “디지털 루피아는 암호자산이나 스테이블코인이 아니며,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법정 통화”라고 못 박았다. 2023년 7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진행된 ‘도매용 디지털 루피아(w-Digital Rupiah)’의 개념 증명(PoC) 단계에서는 발행, 소각, 이체 등의 기술적 검증을 완료했다.
이는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무분별한 결제 수단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고, 중앙은행 중심의 결제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한국 기업의 진출 전략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 ‘스테이블코인’ 정책이다. 한국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제2의 화폐’처럼 상점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면 중앙은행의 강력한 규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현지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OJK의 규제 상황을 면밀히 체크하면서 진출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강현 회장은 “OJK의 규제 우산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을 단순 소매 결제 수단이 아닌, OJK가 관할하는 거래소 내 ‘기축 통화’나 ‘투자형 디지털 금융자산(DFA)’으로 등록하여 1차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는 POJK 27/2024 규정 내에서 제도화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진입이 용이하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공략도 있다. OJK의 디지털자산 전담 부서는 샌드박스를 통과한 기업에 대해 정식 라이선스 취득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결제가 아니라, 대외 무역 대금 결제, 공급망 금융, 특정 기업 생태계 내에서 작동하는 B2B용 토큰 모델이라면 혁신 기술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RWA 시장 진출도 연구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니켈 등 원자재와 탄소배출권 시장의 토큰화를 장려하고 있다. 한국의 블록체인 기술 기업들이 현지 자원 기업과 협력하여 자산 유동화 플랫폼을 구축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인프라 우선’ vs ‘행위 규제 우선’
인도네시아의 행보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을 준비 중인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한국이 시세 조종 처벌 등 ‘행위 규제’와 ‘이용자 보호’를 1단계 입법으로 우선시한 반면, 인도네시아는 거래소와 수탁 기관 등 시장의 ‘인프라’를 먼저 금융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여 재설계하는 방식을 택했다.
사만사 CEO는 “인도네시아는 진입하는데 비용과 시간이 걸리지만, 감독 기구가 일원화되어 있어 장기적으로 국제적 정합성에 맞고, 시장 신뢰도가 빠르게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토큰증권(STO)과 일반 가상자산을 엄격히 구분하여 규제 공백이 발생하는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디지털 금융자산’이라는 포괄적 개념 하에 OJK가 통합 감독권을 행사함으로써 규제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디지털자산을 중심으로 거대한 ‘금융 실험’을 벌이고 있었다. 정부 주도로 강력한 인프라 재편을 추진하면서, 중앙은행의 통화 주권 수호 의지도 강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인도네시아 디지털자산 시장에 진출한다면 ‘2045년 골든 인도네시아’를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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