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방국밥, 소 생고기회 ‘뭉티기’
석류보다 진한 빛깔, 작품같아
막창순대도 상상너머의 맛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이번 겨울, 친구들과 육회 모임을 자주 갖다 보니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뭉티기를 먹어봤냐”고 물어본다.
뭉티기. 나도 말만 들었다. 대구와 경북에서 즐기는 육회의 한 종류라는 것 정도밖에 몰랐다. 육회가 고기를 길게 채를 썰어 국수처럼 먹는 것이라면 뭉티기는 포를 떠서 회처럼 즐긴다는 정도쯤 알고 있다. ‘뭉티기’란 한데 묶어놓은 덩어리를 뜻하는 뭉치의 경상도 방언이다. ‘뭉티기’라는 단어가 경북 안동이 고향인 나에게는 친근한데 음식으로는 본 적이 없었다.
입구부터 남다른 포스 느껴져
그랬더니 서울에서도 이 뭉티기를 잘하는 집이 성수동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르르 가본 집이 말방국밥 성수본점이었다. 친근하지만 생소한 단어인 ‘말방’은 경북 경주시 외동읍의 지명 이름이다. 이 식당을 창업한 할머니가 말방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어릴 때 하고 놀았던 ‘팔방’이랑 이름이 비슷하다. 일연스님이 쓰신 ‘삼국유사’에 등장했을 법한 묘한 매력을 가진 지명이다.
식당은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성수역 남쪽 지역이 아니라 화양동 송정동과 맞닿은 성수동 북쪽 지역에 있었다. 대학 때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이 지역을 자주 왔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온 뒤에는 정말 처음이었다. 30여년 만에 처음 간 동네는 상전벽해였다. 예전에는 문래동처럼 작은 공장들이 많았던 동네였다. 지금은 페라리, 렉서스같은 고급 수입 자동차 매장이 있을 정도로 동네가 화려해졌다. 그렇지만 큰 건물 뒤로 가면 예전의 소규모 공장들이 있기도 했다. 대부분은 뭔가를 짓고 있었다. 성수동 상권이 확장되면서 개발이 한창인 것 같았다.
말방국밥은 성수동 지역의 특징을 아주 잘 소화한 영리한 엑스테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옛 나지막한 공장 건물 전체를 통째로 식당으로 쓰고 있었다. 그래서 식당 입구에서부터 포스가 남달랐다. “우린 육회가 아니라 뭉티기야”라고 표효하고 있었다. 이런 기개 너무 좋았다. 버터를 발라놓은 것 같은 강남 식당의 매끈한 외관만 보다가 이런 뚝심있는 엑스테리이가 맘에 들었다.
하지만 입구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보면 반전이 펼쳐진다. 안은 꽤 넓었고 인테리어도 나무와 흰색 벽의 조화가 멋졌다. 따뜻한 느낌의 미니멀리즘이었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에 빠진 느낌. 천정이 높아서 ‘뭉티기의 전당’쯤에 왔다는 착각이 들었다.

뭉티기, 삶과 죽음 담은 로스코 그림 닮아
먼저 뭉티기를 반반으로 시켰다. 원래 뭉티기는 조금 두툼하게 썰어져 나오는데 서울 사람 입맛에 맞춰 얇게 썰어서 내놓는다. 얇은 것 반, 두꺼운 것 반, 그래서 반반이다.
곧이어 유명한 뭉티기용 매운 고추마늘기름장을 준다. 빻은 마늘(간 마늘이 아니다), 참기름, 고추 다대기를 비벼서 찍어먹는 것이다. 나는 육사시미 마니아다. 주로 고추냉이로 육사시미를 즐긴다. 그런 나에게 뭉티기 마늘기름장은 생소했다. 장은 아주 조금 준다. 조금만 찍어 먹어도 충분하다는 메시지인 것 같았다.
생소한 것은 장뿐이 아니었다. 뭉티기도 낯설었다. 정말 검붉은 선홍빛이었다. 석류알만큼 붉고 짙었다. 미국 추상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의 그림 같았다. 생의 의지로 아우성치는 색깔이었다. 친구 중의 하나가 뭉티기는 접시를 뒤집어서 접시에서 고기가 떨어지지 않아야 당일 도축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이 선홍빛을 봐도 바로 도축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물어보니 뭉티기는 당일 도축 고기로, 육회는 도축 다음날 고기로 만든다고 했다. 고기 색깔은 싱싱할수록 검붉고 공기와 맞닿는 시간이 길어지면 분홍색에 점점 가까워진다. 핏속의 철분이 산화되는 탓이다. 뭉티기와 양념된 육회 색깔이 차이가 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말방국밥의 뭉티기는 아주 담백했다. 내가 먹어온 육회나 육사시미 가운데 담백함으로 꼽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다. 신기했다. 검붉은 핏빛에 이런 담백함이라니. 생긴 건 참치회인데 맛은 도미회였다. 역설적이었다. 뭉티기의 검붉은 색깔이 원초적인 에너지를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지만 담백한 맛은 그 에너지가 내 젓가락질과 함께 공기 속으로 스르륵 사라지는 듯한 묘한 여운을 안겨줬다. 진하디 진한 처음의 루비빛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처음 먹어본 뭉티기 첫 한 점에서 내가 본 것은 진한 석류빛 속의 백색 여백이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고추마늘기름 양념장이 있었다. 열정적으로 보이는 양념장은 매콤하니 맛있었다. 두껍게 썬 살점이 이 양념장이 잘 어울렸다. 그제서야 고기가 여백이 아니라 고기로 느껴졌다. 다음에는 두껍게 썬 뭉티기로 먹기로 친구들과 합의했다. 참고로 뭉티기는 금방 재료가 소진될 수 있어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막창순대, 세련된 지역의 맛 보여줘
말방국밥 반찬은 역시 경상도식이었다. 투박하고 최소한이었다. 그런데 반찬으로 나온 소머리 수육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부들부들해서 매콤한 뭉티기 양념장과 잘 어울렸다. 구수함을 넘어서 향긋했다. 리필도 돼 여러번을 먹었다. 고기내를 이렇게 잘 잡으니 다른 것도 맛나겠다는 기대를 하고 막창 순대도 시켜봤다.
뭉티기도 좋았지만 나는 이 막창순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막창이 아주 쫄깃했고 살짝 훈제해서 향이 좋았다. 도무지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토속적인 맛이었다. 그런데 정밀했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국식 슬라이스 치즈만 먹던 한국 촌놈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가서 처음 본 3년 숙성한 자연 치즈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순대가 모양은 꼬릿할 것 같은데 꼬릿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아마 까다로운 서울’분’들 입맛을 고려해 훈제를 하면서 그 꼬릿한 냄새를 잡은 것 같았다. 나는 꼬릿함이 좋은데 말이다. 그 꼬릿함이 술맛을 좋게 하고 사는 맛을 끌어올리는 건데. 하지만 한 접시 더 먹고 싶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또 막창순대에서 이 집을 칭찬할 대목이 있었는데 순대를 따뜻하게 먹으라고 밑에 뜨거운 물을 담은 냉면사발에 순대 접시를 올려준 것이다. 고체연료를 쓰는 것보다 정겹고 친환경적이었다. 시골 할머니들의 인자하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순대는 와인 안주나 도수 높은 소주가 제격이었다. 아쉽게도 이 집에는 웬만한 음식점에 있는 화요나 진로 증류소주 25도가 없었다. 이탈리아 바롤로나 프랑스 까리냥 같이 육회나 사퀴테리랑 어울리는 강렬한 맛의 와인도 없었다. 서울 삼해소주나 안동 진맥소주를 가져다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매니저 분이 경주법주를 권해줘서 마셨는데 고기와 순대의 격에 맞지 않았다. 술이 너무 둥글둥글했다. 뭉티기와 순대의 멋진 맛을 전혀 깔끔하게 정리해주지 못했다. 차라리 맥주를 마실 것이라는 후회가 됐다.
마지막으로 입가심으로 한우 말방국밥을 시켜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토란대가 들어가 있어서 반가웠다. 안동에서는 육개장에 말린 토란 줄기를 넣는다. 씹는 맛도 좋고 맛도 좋다. 소고기도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해장으로 좋았다.
페어링할 술 없어 아쉬워
이 집을 나와서 다시 입구를 보니 들어갈 때와 다른 느낌이 들었다. 한바탕 색다른 경험을 하고 나온 것 같았다. 내 고향은 경북 안동이라서 경주에서 시작했다는 말방국밥에 오기 전에 ‘이 집 음식이 내 고향 음식과 약간은 겹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뭔가 재미있는 쇼를 보고 나온 것같은 ‘고양됨’이 느껴졌다. ‘뭉티기의 전당’이 아니라 ‘뭉티기의 유원지’, 혹은 ‘뭉티기의 토끼굴’을 갔다온 느낌이었다. 집에 가서 찾아보니 말방국밥 용산본점도 있는데, 내외관 콘셉트가 성수본점과 비슷했다. 그래서 용산본점에도 곧 가보기로 했다. 용산본점을 가기 전에 ‘삼국유사’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전시회장에서 눈물 짓게 했던 마크 로스코의 그림과 말들도 다시 한번 찾아보고.
■ 말방국밥 성수본점 주소: 서울 성동구 광나루로8길 9 (2호선 성수역 9번 출구에서 900m)
■ 메뉴: 뭉티기(5만원), 숯불막창순대(3만원), 한우말방국밥(1만1000원)
*권은중 음식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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