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대주주 지분 제한 등 고강도 규제 검토
업계 “사고와 지배구조 인과관계 없어”
“신속 수습은 오히려 강력한 오너십 덕분”
[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빗썸 오지급 사고를 규제 강화를 위한 빌미로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주주 지분 제한이 그간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규제의 정당성을 확보해 지배구조 개선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업계는 지분 제한과 이번 사태 사이의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대주주 지분을 제한할 경우 책임 경영의 주체가 불분명해지는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자본 확충이나 긴급 장애 대응 등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만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금감원, 빗썸 전격 검사 착수
1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전날 빗썸에 대한 검사 착수를 사전 통지하고, 이날부터 정식 검사에 들어갔다. 오지급 사고 발생 직후인 7일 현장 점검에 나선 지 사흘 만이다. 당국은 이번 사태를 개별 거래소의 단순 실수로 보지 않고 디지털자산 거래소 전반의 내부통제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번 사태를 두고 “디지털자산 거래소의 정보시스템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며 “거래소 정보시스템 자체의 근본적 문제가 노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빗썸은 지난 6일 이벤트 보상으로 이용자 1인당 2000원어치 비트코인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단위 입력 오류로 1인당 비트코인 2000개를 지급하면서 발생했다. 잘못 지급된 물량은 총 62만개다.
문제는 이 수치가 빗썸의 실제 보유량을 훨씬 웃돈다는 점이다. 빗썸의 지난해 3분기 보고서 기준 비트코인 보유량은 약 4만2800개로, 이벤트로 지급된 수량은 이를 약 14배 초과한다. 일부 이용자가 해당 비트코인을 매도하면서, 당시 9700만원대이던 비트코인 가격이 빗썸 내에서 일시적으로 8100만원대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유령 코인’ 우려 속 전문가들 “온체인 이동 없는 장부상 오류
이에 일각에서는 거래소가 장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유령 코인’을 임의로 생성할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이것이 시장 전체의 신뢰 붕괴와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빗썸 내부 전산 시스템에 한정된 개별 거래소의 관리 부실 문제일 뿐 시장 전체 결함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사고 당시 비트코인 가격 폭등 등 이상 현상은 빗썸 내부 거래 환경에만 국한됐을 뿐 타 거래소의 시세나 유동성 체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시장 확산세가 차단되는 모습을 보였다.
김병준 디스프레드 연구원은 “이벤트 보상으로 지급된 비트코인은 빗썸의 내부 장부의 기록 변화일 뿐”이라며 “실제 온체인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상에서 비트코인이 새로 발행되거나 외부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거래소 내부 전산 처리 과정에서 수량이 잘못 반영된 것이란 설명이다.
조윤성 타이거리서치 연구원 역시 “이번 사건은 장부상 수량과 실제 보유 자산 간 정합성을 점검하는 로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휴먼 에러를 차단하기 위한 결재·승인 체계 역시 미비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달라”… 원화 거래소들, 앞다퉈 자산 관리 투명성 강조
빗썸 사태의 여파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거론되자, 각 거래소의 이벤트 물량 처리 방식 및 자산 관리 체계에도 시장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에 대해 주요 거래소들은 이벤트 보상용 물량을 일반 고객 예치 자산과 엄격히 분리된 별도 계좌(Wallet)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업비트는 이벤트 지급 수량을 사전에 확보한 뒤, 이를 이벤트 지급 전용 계정에 반영하고 해당 계정에서만 보상을 분배하는 구조로 자산 분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인원 역시 이벤트 지급 시 고객 자산과 분리된 이벤트 전용 자산·계정을 운용하고 있으며, 시스템적으로 잔고를 초과한 지급이 불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빗은 이벤트 보상이 이벤트 지급용 계정의 잔고 범위 내에서만 출금되도록 설계돼 있어, 일반 자산과 혼용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고팍스도 입출금이 쌍을 이뤄야만 원장에 반영되는 이중원장 구조를 적용하고 있어, 시스템상 고객 잔고에 존재하지 않는 자산이 반영되는 일은 발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 해명에도⋯금융당국 ‘고강도 규제’ 예고
이처럼 원화 거래소들이 각자 내부 통제 방안을 설명하며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이를 개별 거래소의 문제를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적 결함으로 규정하고 고강도 규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당국은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화는 물론, 주기적인 디지털자산 보유 현황 점검을 상시화하고 전산 사고 발생 시 사업자가 고의나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책임을 지는 ‘무과실 책임 규정’을 현재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 기본법(2단계 입법)에 명문화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그간 업계에서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거세게 반발해 온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카드까지 다시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당국은 빗썸 사태를 통해 현행 지배구조하의 내부 통제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 대체거래소(ATS) 수준의 지분 규제를 도입해 소수 주주에 집중된 권한과 수익 구조를 해체하는 근본적인 처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배구조 개편이 ‘만능열쇠’아냐”
하지만 지배구조 분산이라는 처방이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를 두고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단순히 지분을 분산한다고 해서 단일 결재권자가 대규모 자산을 움직일 수 있었던 허술한 승인 체계가 자동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며, 전산 입력 오류를 원천 차단하는 기술적 안전장치가 마련되는 것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명확한 지배구조가 위기 상황에서 책임 주체를 분명히 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반론이 힘을 얻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우회적인 규제보다는 실질적인 내부 통제 프로세스의 고도화와 기술적 가이드라인 마련 등 ‘핀셋 규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혜진 서강대 AI·SW대학원 주임교수는 “빗썸이 이번 사건을 비교적 빠르게 수습하고 신속한 보상 방안을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가 작용했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유권을 제한하기보다 준비자산 공개나 이사회 기능 강화 등 행위 기반의 ‘핀셋 규제’가 더 실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지배구조 개편이 전산 오류 방지를 위한 만능 열쇠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근본적인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지배구조 논란에 매몰되기보다 실무 수준의 구체적인 안전장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거래소 업계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통일된 자산 관리 체계 구축과 상시 감사 절차를 표준화하는 것이 규제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빗썸은 사고 발생 직후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비트코인 오지급 사실을 인지한 지 약 15분 만에 거래와 출금을 즉시 중단했고, 잘못 지급된 비트코인 62만 개 가운데 99.7%를 사고 당일 회수했다. 이미 매도된 물량 중에서도 약 93%를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회수가 불가능한 나머지 0.3%에 대해서는 회사 보유 자산을 투입해 데이터베이스(DB)상 잔고와 실제 보유 자산 간 정합성을 100%로 맞췄다.
아울러 빗썸은 사고 발생 이후 부터 거래소 자산 운용 체계를 전면 재정비하고 있다. 조윤성 연구원은 “사건 이후 빗썸 추정 주소를 들여다 보면 핫월렛(Hot Wallet) 내 가용 자산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보안 사고 예방을 위해 설정된 임계치를 초과하는 물량은 즉각 콜드월렛(Cold Wallet)으로 이전하는 흐름이 포착된다”며 “이는 전체 자산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유동성 재배치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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