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담미, 정성껏 만든 향신유
육회의 맛 상큼하게 끌어내
김치와 나물 반찬까지 대만족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지난 1월 말 토요일, 서울 성수동의 한식당인 일상담미를 가게 된 것은 토요일 근처의 다른 레스토랑에 예약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수동의 많은 프렌치와 퓨전 레스토랑은 뭐 그렇게 예약하기 어려운지. 심지어 저녁에 코스 메뉴 가격이 10만원이 훌쩍 넘는데도 말이다. ‘진짜 불경기인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일상담미가 맛에서 밀리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상담미는 ‘한식 명인’으로 불리는 심명순 선생이 운영하는 한식당이다. 심 선생님은 ‘옥수동 요리 선생님’으로 불리며 1980년부터 한식 요리 강연을 해왔다. 무려 50년 경력의 그는 ‘한식대첩’ 같은 다양한 요리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는가 하면, 10만권 이상 팔렸던 베스트셀러 한식 요리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나도 요리 초보자 시절에 그의 책을 보고 한식을 따라 했을 정도다.
한식 명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그래서 그렇게 유명한 심 선생님의 요리가 궁금하기도 했던 터였다. 다행히 운좋게 예약이 되어서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아마 젊은이들이 몰리는 성수동이다보니 한식보다는 서양식이나 퓨전요리들을 많이 찾는 것 같았다.
일상담미는 한정식 집 같지가 않고 캐주얼 양식당같은 모던한 분위기였다. 인테리어도 노출 콘크리트나 H빔을 기둥으로 그대로 써 성수동 분위기를 냈다. 그곳도 역시 주말에는 거의 만석이었다. 외국인도 있었다. 한식을 즐기기 위해서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의 메뉴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고기, 된장찌개, 김치찌개, 제육, 쭈꾸미, 육회 이런 음식들이었다.
나는 등갈비 김치찌개를 시켰다. 한식 명인이 쓰는 김치도 궁금했고 돼지 등갈비도 궁금했다. 한식 대가의 묵은지는 어떤 맛이고 등갈비의 핏기는 어떻게 제거했는지도 궁금했다. 다른 친구들은 차돌박이 된장찌개와 육회 비빔밥을 시켰다. ‘내가 한식대첩 심사위원을 심사하는구나’라고 다소 건방진 생각도 하게 됐다. 요리하는 사람의 정성과 노고를 무시하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내가 그렇게 싫어하면서 별 것 아닌 권력을 얻으면 이렇게 되는구나라며 쓴웃음이 났다.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찌개 국과 함께 반찬 5가지가 나왔다. 5첩 반상이었다. 나무 트레이에 반찬이 개인이 먹을 수 있도록 담겨져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깔끔했다. 반찬은 김치, 가지볶음, 궁채 등이었다. 반찬이 무척 맛이 있었다. 더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했다. 또 놀라웠던 것은 반찬이 짜고 심심하고 맵고 기름진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오미를 안배한 것이다. 등갈비 김치찌개에는 이면수가 구워져 나왔다. 노릇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촉촉했다.

내가 육회를 안먹었던 건 참기름 탓
그렇지만 이날 가장 맛있는 것은 다른 이들이 시킨 육회였다. 등갈비 김치찌개도 구수하고 새콤했다. 다른 집들과 다르게 안 달았다. 등갈비도 적당한 고기향이 나서 좋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맛나게 먹은 것은 육회였다. 친구들이 맛보라고 조금씩 덜어준 육회가 유별나게 맛이 있었다.
특히 향신유라는 매콤한 기름이 있었는데 이 오일이 별미였다. 보통 육회비빔밥은 고추장에 비벼 먹는데 일상담미에서는 이 향신유에 비벼 먹는다. 향신장은 오일 베이스에 대파, 마늘, 생강, 양파, 고추, 깻잎을 넣어 우려낸 요리용 오일이었다. 참기름 향에 고추 기름향도 약간 나는 것 같았다. 고소하고 매콤하고 깊은 맛이 있었다.
사실, 나는 한식 육회를 잘 안 먹는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한식 육회에는 설탕을 넣는다. 왜 안그래도 은은하게 단맛이 감도는 생고기에 설탕을 넣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배의 단맛으로 이미 충분한데 말이다. 두 번째는 참기름 탓이다. 많은 육회 집의 참기름은 과하게 태운 강배전의 수입 참기름을 쓴다. 그리고 더 안 좋은 건 이게 어느 나라 것인지도 모르는 전 세계의 깨를 혼합해서 만든 참기름이라는 점이다. 국산 참기름, 그것도 약하게 볶은 맑은 참기름을 쓰는 집은 드물다. 국산 참기름은 가격이 수입 강배전 참기름에 견줘 몇배가 비싸기 때문이다. 강배전된 끈적한 참기름은 모든 향을 앗아버린다. 맛도 망친다. 날 것의 소고기가 주는 그 오묘한 맛 그리고 그 맛을 넘어선 생명력을 설탕과 참기름이 덮어 버린다.
또 우리나라는 소고기를 진공포장해서 유통하지 않는다. 당일 도축이나 전일 도축한 고기를 특송하는 아주 좋은 육회 집이 아니면 배탈이 날 수 있다. 나와 맞지 않는 레시피와 또 배탈이 날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에서 육회를 먹을 이유는 없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육회에 눈뜬 까닭
이랬던 내가 육회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에서 요리 유학을 할 때였다. 당연히 이탈리아에서도 한동안 나는 육회를 먹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했을 때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키는 음식이 바로 육회였다(다른 하나는 튀김이었다. 이탈리아는 호박꽃, 생소시지, 멸치, 소고기 등 뭐든 튀겨서 먹는 걸 좋아한다). 심지어 여자 손님이 혼자 와서 육회를 시켜 빵이랑 먹는 경우도 많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올리브유, 레몬즙, 소금 이 3가지만 써서 루꼴라를 얹어준다. 대신 고기는 아주 부드러운 송아지 고기를 쓴다. 프랑스는 카나페, 홀그레인 머스타드, 계란 노른자 등을 쓴다. 좀더 맛이 복합적이다.
이렇게 육회 주문이 많고 나도 만들다가 간을 봐야 하니까 맛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내가 만들었는데도 맛있었다. 담백하며 상큼했다. 최고급 송아지고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이탈리아에서는 지천인 레몬에서 갓짠 즙이 만드는 조화였다. 재료가 좋으니 별다른 기교가 필요없는 거였다. 이런 거라면 매일매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주방 식구들이 먹는 점심과 저녁에 육회가 자주 나왔다. 12시간 노동이 기본인 상황에서 고기를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징용살이 같던 그 시절, 가장 소화가 잘되는 고기가 송아지 육회였다.
또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과 내가 요리를 배웠던 요리학교에서 쓰는 육회용 송아지 고기는 모두 진공포장돼 배송됐다. 도축 당시의 위생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려는 과학적 접근법이다. 유럽연합(EU)은 육회 고기는 진공포장 후 냉장 유통하는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법으로 강제하지는 않는다. 시장의 정육점이나 수퍼에서 그렇게 팔 수가 없지 않는가? 그렇지만 고급 레스토랑은 육회를 이렇게 진공포장된 고기만을 쓴다. 그래서 여름이 긴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도 육회를 식사로 많이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육회용 고기 유통의 신뢰도 제고 방식은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에서 육회에 입문한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육회보다 육사시미를 먹었다. 육사시미는 육회처럼 고기를 가늘게 채로 써는 게 아니라 네모나게 포를 떠서 간장, 기름장, 마늘장에 찍어먹는다. 새로운 방식으로 생고기를 즐기는 법이다. 경북 지역의 뭉티기도 육사시미라고 할 수 있다. 육사시미는 강하게 태운 참기름이나 설탕 없이 고추냉이와 간장을 찍어먹어서 훨씬 내 입맛에 맞았다. 또 아롱사태나 채끝같이 기름이 있는 부위와도 잘 어울려 다채롭게 먹을 수 있었다.
향신유, 내 오랜 고민을 한방에 해결
그렇게 육회를 피해 다니던 나에게 일상담미는 고마운 집이다. 일상담미는 내 오래 묵은 고민을 향신유 한방으로 해결했다. 전세계 참깨의 공급망은 중국이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 국산 참깨 시장은 거기에 견주면 조족지혈이다. 고집스레 참깨 농사를 짓는 올곧은 농민 분들이 돌아가시면 아예 없어질지도 모르는 식품이다. 그런 전지구적 모순에서 오는 육회 맛의 불균형을, 50년 경력의 한식 명인은 향신유라는 기름으로 명쾌하게 해결했다.
일상담미의 향신유는 담백하고 매콤했다. 채썬 육회를 이렇게 맛있게 먹어본 것은 20년전쯤 전남 함평에 가서 당일 도착한 육회를 먹어본 이후 처음이었다. 전남 함평의 육회 고기의 색깔이 서울에서 먹는 육회 색깔보다 진했다. 거의 석류빛이었다. 그 색깔에 압도돼 육회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일상담미를 육회 비빔밥 때문에 다시 방문할 이유가 생겼다.
그래서 바로 다음주에 한번 더 갔다. 육회비빔밥을 시켰다. 역시 맛있었다. 뚝배기 불고기도 시켜봤다. 불고기의 특성상 달았지만 시중의 불고기와 다르게 아주 달지 않았다. 간과 당분을 잘 잡아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김치와 반찬도 어쩌니 맛있는지. 지난번엔 가지가 맛있었는데 이번에는 청포묵이 너무 맛있었다.
다행이었다. 어느 나라 식재료로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는 한식이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깐깐하게 만든 한식집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게. 그리고 나에게 이런 ‘아재’ ‘꼰대’ 입맛을 선물해 주신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께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일상담미의 깔끔한 육회 비빔밥 반상 덕분에 TV 화면에서 완고하고 깐깐하게 비쳐졌던 심사위원 심명순 선생님이 우리 할머니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 일상담미 주소: 서울 성동구 뚝섬로13길 36 6층(2호선 성수역 3번 출구에서 450m)
■ 메뉴: 한우육회 비빔밥 반상(2만9000원), 비빔밥 반상(1만9000원: 비건식도 가능), 등갈비 김치찌개(2만9000원)
*권은중 음식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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