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가범죄와 가상자산 국회 정책 세미나
일본, ‘보고 의무’ 통해 사각지대 최소화
“디지털자산 통한 가치 이전, 명확한 등록 의무 필요”
[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디지털자산(가상자산)을 활용한 신종 ‘환치기’ 수법이 기술적으로 고도화되는 가운데 개인이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자금을 해외로 송금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외국환거래법상 디지털자산은 ‘외화’로 분류되지 않아 제재 근거가 없고, 개인이 자기 이익을 위해 반복적으로 거래를 수행해도 ‘업무’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정영기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초국가범죄와 가상자산’ 세미나에서 디지털자산을 이용한 불법 외환거래의 실태를 조명하며 “디지털자산은 국가 간 자금 이동의 매개수단으로 기능하면서, 과거보다 훨씬 정교하고 추적이 어려운 방식의 환치기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에는 브로커 간의 신뢰가 핵심이었던 환치기가 이제는 마약 자금 등 불법 자금을 디지털자산으로 전환해 단독으로 국내에 송금·매각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별도 공범이나 협력자 없이도 자금 세탁이 가능해졌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활용한 차익거래도 주요 사례로 언급됐다. 해외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디지털자산을 구매한 뒤 이를 국내에서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고 그 수익을 다시 해외로 보내 동일한 구조를 반복하는 방식이다. 정 변호사는 “이러한 반복 거래는 외관상 단순 투자처럼 보이지만, 구조상 불법 외환거래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그러나 현행 외국환거래법으로는 이러한 신종 수법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어렵다. 법률상 ‘대외지급수단’은 원칙적으로 외화로 표시된 자산만을 포함하며,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자산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 변호사는 “비트코인은 법적으로 외환에 해당하지 않아 감독 당국의 관리 범위 밖에 있다”며 “만일 디지털자산을 지급수단으로 법에 명시할 경우 정부가 이를 공식 결제수단으로 인정하는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기 때문에 정부도 신중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거래 목적이 타인을 위한 것인지 여부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지는 점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금을 모집해 타인의 거래를 대행하는 경우에는 ‘무등록 외국환업무’ 또는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자금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거래를 수행한 경우에는 법적으로 ‘업무’로 간주되지 않아 형사처벌이 어려운 실정이다.
정 변호사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아 거래를 수행하면 명백히 제재 대상이 되지만 본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자기 자금을 이용한 거래는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러한 거래가 자본거래 미신고에 해당하더라도 형사처벌 기준은 20억원 이상 송금 시로 규정돼 있어 자금을 분할해 전송할 경우 처벌을 회피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 변호사는 “법원도 금액을 쪼개 보낸 행위에 대해 개별적인 정황을 고려해 합산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사실상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입법적 보완책으로 정영기 변호사는 일본의 외환 규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일본은 디지털자산을 지급수단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이 3000만엔(약 2억8000만원) 이상을 해외로 송금하거나 이전할 경우 당국에 보고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정 변호사는 “일본은 개인 지갑 간(P2P) 거래에 대해선 거래 당사자가 직접 신고 의무를 지고, 거래소를 통한 이전은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확인 절차를 수행하게 하고 있다”며 “거래 경로에 따라 책임 주체를 분리함으로써 사각지대를 줄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거래소에 부과되는 확인 의무 역시 위험 지갑 여부 확인 등 기본적인 수준으로 한정돼 있어, 과도한 부담 없이 실효성 있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정 변호사는 이러한 방식을 한국의 제도 설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국회에는 디지털자산의 해외 이전에 대한 등록 및 확인 절차를 명문화하는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이 다수 제출돼 있다. 그러나 아직 논의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정 변호사는 “디지털자산을 활용한 국경 간 가치 이동은 외국환거래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이를 명확히 등록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제도권 거래소의 확인 의무를 법적으로 정비하고, 우회 경로를 이용한 거래에도 일정 수준의 신고 의무를 도입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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