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 매직, 호주 쉬라즈 100% 와인
강렬한 베리 맛에 진한 초콜릿 향까지
바로사 벨리 잉크 와인의 새로운 전형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와인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호주 쉬라즈(Australian Shiraz)는 한번을 거치는 필수 코스다. 그만큼 맛과 향이 강렬해서 초보자들도 즐겁게 마실 수 있다. 너무 진해 잉크에 비유될 정도다. 또 벨벳처럼 부드러워 와인 서빙이 어렵지 않다. 내 경험으로는 아르헨티나의 말벡(Malbec), 스페인의 모나스트렐(Monastrell) 정도가 호주 쉬라즈의 진함에 필적할 것 같다.
말벡도 그렇지만 호주 쉬라즈의 원산지는 프랑스 남부다. 프랑스 쉬라(프랑스에서는 단어 마지막의 자음을 발음하지 않는다) 프랑스 쉬라 역시 프랑스 와인 가운데에서는 진하고 단단한 편이다. 하지만 날씨가 따뜻한 호주 쉬라즈의 진함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대신 프랑스는 우아하거나 레이어가 조금 더 다층적인 느낌이 있다. 또는 쉬라에다 그르나슈(Grenache)와 무르베드르(Mourvèdre)를 블렌딩하기도 한다. 이 블렌딩이 교황이 먹었다는 샤또네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 약자로 CdP)다. 역시 한국인이 좋아하는 와인이다.
바로사벨리, 100% 쉬라즈 많아
호주 쉬라즈는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블렌딩보다는 100% 쉬라가 많다. 그만큼 이 지역은 쉬라즈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특히 적도와 가까운 북쪽 바로사((Barossa) 벨리의 경우는 쉬라즈 100%를 고수하는 와이너리가 많다. 프랑스 쉬라에 감춰진 야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이다. 100% 쉬라즈는 블랙베리, 자두가 기본이고 거기에 후추, 정향 같은 향신료와 가죽, 민트 같은 허브향이 난다. 이 와인은 소고기도 좋지만 양고기와 먹으면 최고의 궁합이다. 그래서 와인 초년병 시절에 많이 마셨다. 지금도 가벼운 자리에는 호주 쉬라즈나 카베르네 쇼비뇽을 블렌딩한 와인을 가져 간다.
그렇지만 와인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눅진한 호주 쉬라즈보다는 깔끔하며 우아한 프랑스 쉬라가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수학이나 과학에 입문하면 점점 어려운 난제에 관심이 끌리 듯이 와인도 드라이하고 점점 단단해지는 걸로 관심이 쏠린다. 비싼 돈을 주고 쩔쩔 매는 와인을 사는 바보짓을 태연하게 하게 된다. 탄닌이 강하고 구조감이 좋은 와인은 접근하기 어렵지만 그 높은 장벽을 넘어서면 감탄할 만한 맛을 주는 탓이다. 와인을 마시는 건지 모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 한 한의사 선배가 바디케어숍을 서울 강남구에서 오픈한다고 해서 개업식에 갔다 왔다. 바디케어에 관심이 많은 30~50대 여성분들이 개업식에 많이 왔다. 이들을 위해 선배는 여러 종류의 와인과 치즈나 샌드위치 같은 음식을 준비했다.
구비된 와인은 호주, 이탈리아, 포루투갈의 가성비 와인들이 주였다. 3만~5만원대쯤으로 목넘김이 부드러운 와인들이었다. 선배가 와인에 조예가 깊다고 하더니 좋은 선택이었다. 19크라임즈, 실크앤스파이스 등은 나도 이미 여러 차례 마셔본 가성비 와인이었다.

고급스러운 야생의 에너지가 느껴져
그런데 이날의 주인공인 선배가 직접 들고 다니면서 따라주는 와인이 있었다. 그게 스몰 걸리(Small Gully) 와이너리의 블랙 매직 쉬라즈였다. 스몰 걸리는 바로사 벨리의 지명 이름이다. 처음 한모금에서부터 ‘미국 탄산음료 닥터 페퍼가 초콜릿 날개를 달고 천상으로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성들여 만든 트렌치 코트에 강열한 호랑이 그림을 그려 놓은 구찌나 버버리의 디자인이 떠올랐다. 야생의 날 것을 고급스러운 에너지가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 행사에서 와인은 플라스틱 잔으로 서빙됐는데, 이 와인에서는 그 플라스틱 잔을 뚫고 나오려는 검은 생명력이 느껴졌다. 최근 마셔본 와인 가운데 자기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가장 디오니소스적인 와인이었다. 블랙 매직이라는 이름은 이래서 붙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론의 에르미타주(Hermitage)와 바로사 벨리의 아스탈리스(Astralis)를 비롯해 비싼 쉬라를 제법 마셔 봤지만 결이 다른 느낌의 쉬라즈였다.
찾아보니 블맥 매직은 바로사 밸리 가장 북쪽(가장 따뜻한 지역)과 서쪽의 쉬라즈를 블렌딩해서 만든다. 알코올 도수는 해마다 다르지만 내가 마신 2019년 빈티지는 무려 16.4도였다. 내가 마셔 본 레드 와인 가운데 가장 도수가 높았다. 하지만 입 안에서 미끄러지듯이 넘어갔고 피니쉬도 아주 길었다. 바닐라와 초콜릿 향이 났다. 2019년 블랙매직의 비비노 평점은 4.5였고 2014년은 4.8를 받았다. 나처럼 와인을 마시고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가격은 9만~10만원대. 퍼포먼스에 견줘 괜찮은 가격이었다. 그래서 그 술을 조금 더 마셨다. 마실 때마다 16.4도라는 높은 알코올 도수와 상관없이 진한 과일향과 당밀같은 달콤함 그리고 넛맥, 바닐라, 초콜릿 향이 밀려왔다, 바로사 벨리의 쉬라즈가 호주의 태양처럼 강렬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농밀할 줄은 몰랐다. 포트 와인이나 초콜릿 와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탄닌이 부드러워 금세 정점을 찍을 것으로 짐작됐다. 물론 너무 맛있어서 그 전에 다 마시겠지만 말이다. 블랙 매직은 언코르킹을 하고 바로 마실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다 초콜릿과 강렬한 과일 맛이 있어 다가올 발렌타인데이에 연인과 마실 와인으로 제격일 것 같았다.
*권은중 음식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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