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드보이, 대서양 굴로 유명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와인
레몬향 미네랄감으로 굴과 조화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대한민국의 겨울은 축복받았다. 해산물이 지천이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서양에서는 개당 3만~5만원쯤 하는 굴이다. 그래서 겨울에는 굴파티가 이곳저곳에서 열린다. 내가 와인을 좋아하다보니 굴파티에 와인공급책을 자주 맡는다.
내가 와인을 사는 방식은 투 트랙이다. 해마다 5월, 10월 마트에서 세일을 할 때 잔뜩 사놓는다. 마트 세일 때 와인 가격이 평소의 거의 반값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한번에 50병쯤 샀지만 지금은 30병 정도 산다. 해마다 가격이 비싼 걸 산다는 뜻이다. 집안 기둥이 뽑힐 수도 있다는 부르고뉴에 한눈을 팔았을 때는 10병 정도밖에 못 샀다(절대 권하지 않고 싶다).
두 번째 구매 방식은 집이나 사무실 주변의 소규모 와인숍에서 특색있는 와인을 구비 해놓았다는 알림이 오면 그걸 산다. 가격은 병당 10만~20만원 정도로 비싸다. 하지만 마트에서 구하기 어려운 독특한 와인들을 구매할 수 있다.
나름 촘촘한 와인 공급망을 구축했다고 생각하지만 허점 투성이다. 특히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의 구멍이 크다. 내가 해가 갈수록 프랑스 부르고뉴나 미국 나파밸리의 레드 와인을 많이 사는 탓이다. 레드 와인은 폼은 나지만 화이트 와인만큼 쓰임이 좋지 않다. 나와 가족을 위한다면 화이트와 스파클링 와인을 사는 게 현명하다. 특히 샴페인이나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이나 리슬링같은 화이트 와인은 어떤 음식에도 어울린다. 몇 년전까지 이 와인들은 내가 박스로 사다 놓고 먹던 와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가의 레드 와인을 많이 산다. 모임에 가져가기 위해서다.
샤블리 대신 택한 알바리뇨
이런 와인 구매 방식의 변화는 겨울철에는 낭패를 불러 온다. 얼마전 굴 모임에 초대를 받았고 내가 와인을 책임져야 했다. 나는 프랑스 샤블리와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을 가져갈 계획이었지만 집에는 해산물에는 전혀 쓸데 없는 고가의 레드만 뒹굴고 있었다. 그래서 샤블리와 쇼비뇽 블랑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갔는데 일요일이라고 문을 닫았다. 그때의 황당함이란.
결국 빈손으로 굴 파티에 가야 했다. 호스트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고 파티 장소 근처의 와인숍을 소개받았다. 정말 망신이었다. 더욱이 동네 와인숍에 도도한 샤블리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심지어 샴페인도 없었다. 대안으로 이탈리아 화이트, 프랑스 크레망, 스페인 카바 정도가 있었다. 하지만 다 별로였다. 굴과 어울릴지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과도한 규제란 이렇게 모임이 많은 시민을 지치게 만든다.

그러다 눈에 딱 들어온 것이 알바리뇨(albarino)로 만든 샌드보이였다. 알바리뇨는 대서양을 끼고 있는 스페인 최북단 갈리시아(Galicia)의 리아스 바이사스(Rias Baixas)의 포도 품종으로 레몬 향을 특징으로 한다. 알바(alba)는 흰색이란 뜻이고 리뇨(rino)는 작다라는 뜻이다. 대서양을 끼고 있는 갈리시아 주는 굴이 유명하다. 내가 크레망, 까바, 이탈리안 화이트를 고르지 않은 이유는 이들 지역에서는 굴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중해에서는 굴이 잘 나지 않는다. 까바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스페인의 카탈루니아의 와인이다.
그런데 이 샌드보이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이웃 포르투갈의 알바리뇨를 썼다. 내가 포루투갈 알바리뇨를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이게 약간의 감점 요인이었는데, 같은 이베리아 반도이고 포르투갈 역시 바다를 끼고 있어 알바리뇨의 맛은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샌드보이가 비비노 평점 4.0이 넘는다는 것이 구매에 큰 역할을 했다. 어떤 해에는 무려 4.6을 받기도 했다. 샌드보이란 이름은 이 지역 해안가 술집의 전통에서 왔다고 한다. 고객들이 바닥의 물에 넘어지지 말라고 주인들이 술집 바닥에 모래를 뿌렸고 이 모래를 영업시간 이후 ‘샌드 보이’들이 치웠다는 것이다. 모래를 치우는 일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힘든 일이었고 샌드 보이들은 술집 주인에게 시원한 와인을 요구했다고 한다. 주인은 급여의 일부를 시원한 알바리뇨 와인으로 갈음해 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강도 높은 노동의 고단함을 없애줄만큼 상큼 발랄한 와인이라는 뜻이다.

‘모래 치우던 인부’란 이름이 붙은 까닭
이 와인에 고사성어 ‘조삼모사’를 떠올리게 하는 다소 도발적인 이름을 붙인 것은, 이 와인을 만드는 시티즌 와인의 독특함에서 비롯된다. 이 와인 그룹은 2020년 코로나19 때 전 세계 셧다운(봉쇄) 되던 때 각국의 와인 전문가들이 온라인 상으로 모여서 설립한 젊은 와인 기업이다. 이들의 모토는 “와인이 숭배의 대상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며 “우리는 전통과 유산을 따르지 않고 고객의 즐거움과 트렌드를 따른다”이다. 그래서 ‘샌드 보이’같은 ‘웃픈’ 이름이 붙은 와인을 만든 것이다.
거대 자본의 부속품처럼 일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사실 스페인 시골 해안가의 샌드 보이랑 다를 게 없다는 의미가 포함된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유산 전통 이런 캐캐묵은 낡은 가치를 따지지 말고 우리 알바리뉴나 한 잔 해. 이 샌드보이들아.”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시티즌 와인이 만드는 와인은 그래서 대부분 경쾌하고 발랄하다. 와인과 청량음료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게 목표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유기농 포도를 쓰는 등 젊은 층이 중시하는 기업 윤리를 잊지는 않는다. 요런 점은 또 확실하다.
하지만 ‘꿩 잡는 것이 매’아닌가. 샌드보이 알바리뇨와 함께 가져간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은 모두 굴과 아주 잘 어울렸다.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은 발랄하며 상큼한 맛이고 알바리뇨는 거기에 견줘서는 묵직하면서도 상큼했다. 레몬향은 기본이고 복숭아 자몽향 같이 기분 좋은 향이 났다. 거기에 바닷가의 흰돌을 부딪칠 때나는 향같은 미네랄감이 무게 중심을 잡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 샌드보이가 굴과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타바스코와 우스터 소스를 넣은 블러드 메리 소스를 얹은 굴과 매칭이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보다 훨씬 좋았다.
대형마트가 일요일 문을 닫아 샤블리 대신 우여곡절 끝에 집어 든 스페인의 알바리뇨가 굴과 잘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늘 여름철에만 먹던 알바리뇨를 이제 겨울에도 즐길 수 있게 됐다.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 독일 호주 리슬링 말고도 스페인 알바리뇨도 열심히 사서 쟁여둘 계획이다.
*권은중 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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