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영수퍼, 시골 슈퍼 안쪽 방에서
음미하는 할머니의 정성스런 손맛
전통 음식으로 차린 치유의 밥상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지난 한 해 전국의 많은 맛집을 다녔다. 내가 맛집을 찾는 최우선 방법은 동네 사람들의 소개다. 음식점 관련해 워낙 광고나 협찬이 많기도 하지만 내 입맛이 단맛에 꽤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SNS나 포털 리뷰는 가급적 참고하지 않는다. 단맛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포털 리뷰를 주로 남기기 때문이다.
거기다 요즘 음식은 비주얼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SNS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SNS에 올리기 위해서는 기름지고 강렬해야 한다. 그래서 달고 짜고 맵고 기름지다. 그리고 색깔이 튀어야 한다. 어떤 음식은 형광색에 가깝다. 포털의 평점 높은 음식점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음식점 평점 믿으면 안되는 까닭
이런 요즘 음식 트렌드와 대척점에 있는 음식이 집밥이다. 다소 밋밋해보이는 집밥은 편의점 음식보다도 ‘인스타그래머블’하지 않다. 역설적으로, 형광색 음식이 판을 치는 현실은 집밥에 대해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유가 된다. 무채색 집밥은 SNS는 꺼리지만 몸에서는 진짜로 원하는 건강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집밥은 엄청난 시간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집밥의 베이직은 간장과 된장 그리고 김치와 나물이다. 발효에는 최소한 몇 개월이 걸린다. 발효의 맛은 시간의 미학이다. 나물은 전근대적다. 수북한 나물을 다듬고 삶고 무치면 딱 한 접시가 나온다. 가성비가 제로에 수렴한다.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가난했던 근대 이전에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가족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산과 들에서 온종일 채집한 식물을 조리한 음식이 나물이다. 무한대의 지혜와 무한대의 노동이 들어가는 양가적인 음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식재료의 중요함을 일제 강점기부터 잊어 먹고 있다(잃어 버렸다라는 말도 성립한다). 지금 시판되는 된장 간장의 상당양은 된장맛, 간장맛 화학 조미료에 가깝다. 발효의 근원인 메주를 쓰지 않고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치는 거의 중국산이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물은 외식 밥상에서 사라지는 중이다. 이제 어떤 재료로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음식들을 우리는 하루에 한끼 이상을 먹고 있다. 우리가 집밥을 갈망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갈망뿐 아니라 안전에 대한 갈망일 수 있다.
그래서 2025년 내가 가본 가장 최고의 음식점은 강원도 정선군의 한 허름한 슈퍼식당을 꼽는다. 정선 지역 언론사 에디터를 역임했던 지인의 소개로 지난해 8월 방문했다. 위치는 내가 좋아하는 정선 북평읍 나전역 근처다. 나전역은 산높고 물깊은 정선에서 드물게 평야 지역이다. 골지천이 흐르는 완만한 산과 강과 들이 조화롭다. 하지만 나전역은 석탄 채광을 위해 설립된 역이었다. 석탄광산은 오래전 폐광이 됐고 지금은 평화롭게 강과 들이 펼쳐져 있다.
번영수퍼는 정말 작정하지 않으면 찾아가기 힘들다. 슈퍼라기보다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기억할 수도 있는 ‘전방’이다. 식당도 슈퍼 안쪽의 방에 마련돼 있다. 방 테이블은 3개. 2평 남짓한 시골집의 방이다. 협소하기 때문에 전화로 꼭 예약해야 한다. 운영시간도 점심시간 정도다.
방에는 시골 할머니 집처럼 가족들 사진이 걸려있다. 손주로 보이는 젊은이들의 대학졸업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나의 시골 할머니 집에서 나는 짚냄새와 나무냄새같은 게 난다. 밥을 먹지 않아도 이미 여기서 게임 끝이었다. 그리운 할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이었다.

고추장 된장 김치 나물, 모두 완벽해
음식은 더욱 놀라웠다. 그냥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 그 자체였다. 보리밥을 시켰는데 된장국, 애호박나물, 무나물, 두부조림, 늙은 호박 무침, 콩나물, 김치, 된장찌개가 한상 가득 나왔다. ‘무위자연’에 가까운 맛이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정교한 장치가 있었다. 일단 고추장. 이 집 고추장은 이제 서울에서는 맛보기 힘든 응축된 힘이 있었다. 태양초를 썼는지 맵고 쨍했다. 서울에서는 사라진 정성 가득한 고추장. 예전 나의 할머니가 하신 것처럼 아마 마당에 고추를 말리고 직접 빻아 왔지 않을까? 안 그러면 이렇게 쨍한 맛이 날 리가 없다. 좋은 고춧가루를 쓴 김치도 담백하고 매콤했다.
된장찌개도 참 맛났다. 된장은 ‘정선의 자랑’, 막장을 썼다. 검은 된장이다. 백두대간 산골의 미생물은 발효력이 좋아서 금세 발효가 된다. 그래서 막장이라고 한다. 강원도 막장을 먹으면 그 심심하고 깊은 맛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된장의 블랙홀’이라고나 할까. 함께 내놓은 나물 간은 심심하지도 짜지도 않았다.
소박한 양은 쟁반 한상에는 추억도 위로도 있었다.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오마주의 밥상이었다. 이렇게 가슴에 담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 밥상이 1인분에 7천원이다. 송구한 가격이다. 재작년까지는 5천원이었는데 작년부터 올렸다고 한다. ‘암요 올려야 합니다. 더 올리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음식값을 올린 까닭은 인상 금액의 일부를 불우이웃돕기에 쓰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인 할머니는 약간 거동이 불편해보이셨다. 마음이 저렸다. 어르신에게 내가 “너무 맛있다”고 말씀드리니 “별거 아닌데 맛있게 먹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셨다. 허세와 과시가 기본값인 서울에서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보다.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식사를 마치고 슈퍼를 나서니 서울의 탁함과 독함에 절여진 몸과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치유의 밥상이었다.
■ 주소: 강원도 정선군 북평3길 58-6(전화 예약 필수)
■ 메뉴: 보리밥(7000원), 메밀국죽(7000원)
*권은중 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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