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박현재 에디터] 달러·원 환율이 1500원을 위협하는 가운데 국내 투자자들이 원화 가치 하락을 피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를 대량 매수하고 있다. 하지만 거래소에 쌓여야 할 ‘디지털 달러’는 사라지고, 한국에서 매수한 테더 상당수가 해외로 이동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사들인 테더가 국내 유동성으로 쌓이지 못한 채 해외 거래소로 빠져나가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 거래소와의 금리 격차, 국내 규제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고환율 시대 디지털 국부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테더만 급증…한국서 산 ‘디지털 달러’가 사라졌다
24일 블록미디어 리서치팀이 디지털자산(가상자산) 데이터 분석 업체 크립토퀀트의 온체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7월부터 국내 5대 원화마켓 거래소의 전체 코인 거래량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시장의 투기적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는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유독 USDT 거래량만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며 5개월째 가파르게 증가했다.

특히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업비트에서 거래된 테더의 규모는 무려 69억달러(약 9조6000억원)에 달했다. 약 18억달러(약 2조6600억원) 거래량을 보였던 6월에 비해 무려 3.8배나 증가한 것이다. 고환율 국면에서 원화를 팔고 달러 페깅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해 달러(USDT)를 사려는 개인들의 필사적인 수요가 반영된 결과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월30일 기준 1354원에서 이날 1476원으로 올라 5개월 새 약 9%p나 상승했다. 우리나라 원달러 환율은 역사적으로 1100원에서 1200원 사이에서 움직였다. 환율로만 따지면 최근 환율은 금융위기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거래량 증가와 달리 업비트에 남아 있는 USDT 잔고는 11월24일 기준 약 220만달러(약 30억원)에 불과했다. 수개월간 9조원이 넘는 USDT가 거래된 것에 비하면 업비트 지갑에 정착한 물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 거래소에서 UDST를 사들이되 보관은 하지 않고 즉시 외부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같은 기간 세계 최대 디지털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의 USDT 보유량은 426억달러(약 62조8000억원)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에서 빠져나간 스테이블코인이 해외 거래소의 유동성으로 흡수되고 있는 셈이다.

0%와 7%의 차이… ‘해외 예치’가 더 합리적인 구조

국내 거래소 지갑에 USDT를 보관해도 별도의 수익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바이낸스 등 글로벌 거래소는 마진거래 대출이나 미국 국채(T-Bills) 등 실물 자산 투자에 활용해 연 4%에서 많게는 10% 수준의 예치 수익을 제공한다.
같은 USDT라도 국내에서는 수익률이 0%지만 해외로 이동하는 순간 수익이 붙는 구조다. 국내 거래소는 스테이블코인 예치 경쟁력이 떨어져 이용자가 자산을 국내에 보관할 유인이 적다. 결국 한국에서 빠져나간 테더가 해외 거래소의 유동성으로 편입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 규제가 부른 역설… ‘보호’가 ‘유출’로 이어졌다
국내 거래소가 예치 상품을 제공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규제에 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거래소의 고객 예치금 운용을 유사수신 행위로 간주해 금지했다.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거래소의 금융 서비스 기능을 제거하고 예치 기반 수익 모델을 봉쇄한 셈이 됐다.
결과적으로 한국 거래소는 예치 기능도, 운용 수익도 없는 단순 ‘코인 정거장’이 됐다. 투자자들은 고환율 위험을 피하기 위해 USDT를 샀지만,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국내 대신 리스크를 감수하고 해외 거래소로 자산을 이동시키는 선택을 했다.
이는 단순히 스테이블코인 거래 증가가 아닌, 원화가 USDT로 환전된 뒤 해외로 유출되는 구조적 이동이다. 국내 거래소는 매매 수수료만 얻고, 실제 운용 수익은 해외 플랫폼이 가져가는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는 유동성 부담과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취약성만 남게 됐다.
전문가들은 고환율 시대에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증가할 것이 큰 만큼, 국내에서도 일정 범위 내에서 미국 국채 등 초우량 자산 기반의 운용 모델을 허용하거나 투명한 온체인 스테이킹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다면 경쟁열위에 빠진 한국 디지털자산 시장은 해외로 달러를 보내는 ‘영구적 환전소’로 머무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